배우들의 새로운 시도는 작품을 선택하는 동기 중 하나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도 비슷한 캐릭터만 맡는다면 피로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배우들은 매 작품마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맞춤형 연기를 선보이면서도 소재와 장르에 변화를 주며 연기 스펙트럼을 꾸준히 확장한다. 배우들의 다양한 변신 중 의외의 모습으로 유쾌하고 엉뚱한 웃음을 선사했던 사례를 살펴본다.

정직한 후보(2019) – 김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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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정직한 후보]는 라미란의 코미디 연기가 단연 빛나는 영화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국회의원이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소화하며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라미란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리액션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특히 그동안 주로 무겁고 강한 캐릭터를 맡았던 김무열의 변신이 새롭다. 입만 열면 진실을 말하는 주상숙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보좌관 박희철로 분해 짠내 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왜 진작에 이런 연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하다. 반갑게도 [정직한 후보] 속편이 제작된다고 하니 김무열의 고군분투 코미디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됐다.

피끓는 청춘(2013) – 이종석, 박보영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피끓는 청춘]은 박보영, 이종석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종석은 바람둥이, 박보영은 학교 일진으로 변신해 1980년대 충청도 시골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로맨스 스캔들을 펼쳐 보인다. 먼저 박보영은 전작에서 쌓아온 사랑스럽고 청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욕설을 툭툭 내뱉고 서늘한 눈빛으로 쏘아대는 거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반대로 이종석은 능글맞은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사노바라는 명성에 걸맞게 여학생들을 눈빛으로 공략하며 서슴없이 다가서면서도 불량 남학생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플랜맨(2013) – 한지민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편의점 가는 시간까지 알람에 맞출 만큼 시간관념이 철저한 남자가 짝사랑 상대에게 퇴짜를 맞으면서 본의 아니게 무계획 라이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 [플랜맨]은 독특한 캐릭터로 아기자기한 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다. 정재영이 스스로는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남들 눈에는 유별난 주인공 한정석으로 분해 특유의 진지한 모습에서 엉뚱한 웃음을 유발한다. 한지민은 그를 계획 없는 삶으로 끌어들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유소정을 맡아 그간의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 대신 즉흥적이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출중한 노래 실력도 확인할 수 있다.

내안의 그놈(2018) – 박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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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사고로 몸이 바뀐 조폭과 왕따 고등학생. [내안의 그놈]은 익숙한 영혼 체인지를 소재로 빵빵 터지는 재미를 선사하는 코미디 영화다. B1A4 출신 진영이 영혼이 바뀌기 전의 학생 동현과 조폭 아재 판수의 영혼으로 바뀐 동현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기대 이상의 열연을 펼치는데, 바뀐 영혼의 또 다른 주인공 박성웅도 의외의 모습으로 웃음제조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첫 등장 때만 해도 이전 작품에서 본듯한 기시감이 강하지만, 소심한 고등학생으로 바뀌고 나서는 툭하면 겁에 질리고 잔뜩 주눅 든 표정과 행동으로 영화 후반부를 유쾌하게 책임진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7) – 이병헌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한물간 전직 복서와 서번트증후군 동생, 시한부 엄마.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설정과 스토리는 진부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돋보이는 영화다. 서번트증후군이 있는 진태를 맡은 박정민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캐릭터에 공을 들이고, 이제껏 남 같은 존재로 살아왔던 두 형제의 엄마 인숙 역의 윤여정은 뻔한 눈물조차 뜨겁게 만든다. 그리고 모처럼 허술하고 인간적인 캐릭터로 돌아온 이병헌의 연기 변신이 반갑다. 그동안의 선 굵은 이미지에서 탈피해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극의 윤활유 역할을 하며 웃음과 감동을 이끈다.

굿바이 싱글(2015) –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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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싱글]은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톱스타 주연이 인기 회복을 위해 가짜로 임신 선언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김혜수의 첫 코미디는 아니지만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신밖에 모르는 철없는 톱스타 주연을 맡은 김혜수는 경쾌하고 발랄한 톤으로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는데, 오랜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로 분한 ‘마블리’ 마동석과의 호흡이 유쾌하다.

똥개(2003) – 정우성

이미지: 쇼이스트

곽경택 감독의 [똥개]는 데뷔 때부터 청춘스타였던 정우성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이탈한 영화다. 똥개란 별명을 가진 철민 역을 맡아 빈둥거리며 멍하게 살아가는 어눌한 청년의 일상을 능청스럽게 보여주는데,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통해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정우성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덥수룩한 머리부터 대충 주워 입은 듯한 옷차림에 구부정한 자세와 어벙한 표정까지, 친근한 동네 형이 되어버린 정우성을 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망가져도 타고난 비주얼은 어디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