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 찬열’이 아닌 ‘가수’ 박찬열의 가능성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어딘가 부족하다.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좋았으나 그 외의 것에서 아쉬움이 드러난 작품, 바로 [더 박스]다.

이미지: (주)씨네필운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지훈에겐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무대공포증’이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꿈을 펼치지 못하던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 한때 스타 가수를 키워낼 정도로 잘 나갔으나 지금은 빚만 남은 프로듀서 민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픈 민수는 ‘관객을 볼 수 없게 박스를 뒤집어쓰고 노래를 해보자’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훈에게 10번의 공연을 함께 하기로 약속받고,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버스킹 로드 무비’를 표방했기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다. 사실상 원톱 주연인 만큼 부담감이 클 법도 했지만, 찬열의 퍼포먼스는 확실히 기대 이상이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와 콜드플레이 ‘A Sky Full of Stars’, 쳇 베이커 ‘My Funny Valentine’부터 트로트까지, 찬열은 특유의 중저음 보이스로 곡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펼친다. 아이돌 그룹 멤버 찬열이 아닌, 가수 찬열의 가능성과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이 순간들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찬열의 퍼포먼스를 뒷받침할 든든한 지원군도 있다. 다이나믹듀오 개코와 ‘교대역 촛불 하나’ 영상으로 유명세를 탄 가수 안코드는 짧은 출연에도 최소 한 곡의 노래를 소화해 존재감을 빛냈으며, 연극 연출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양정웅 감독이 만들어낸 뮤지컬 같은 순간들과 음악감독 에코브릿지의 사운드트랙이 더해지면서 작품 내 음악적인 완성도를 높인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해서 팬들에겐 찬열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미지: (주)씨네필운

다만 이 작품을 ‘영화’로 보자면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무대공포증과 빚이라는 각자의 ‘박스’에 갇힌 채 살아갔던 지훈과 민수가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나고 성장하는 여정은 익숙해도 나름의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의 뼈대를 뒷받침해야 할 요소들은 빈약하고, 그 공백을 흔한 클리셰나 극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는 장면들로 메꾸려고 하다 보니 영화의 매력이 반감된다.

우선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민수가 지훈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차리는 건 극초반부, 유료 주차장 관리실에서 지훈이 기타 연주를 듣고 나서다. 아무리 민수가 잘 나가는 프로듀서였기에 짧은 연주로도 재능을 파악했다고 쳐도, 관객 입장에서는 그 순간 하나만 가지고 이후 재즈, 팝, 트로트 등 전혀 다른 매력의 음악 장르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지훈의 모습을 선뜻 납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전국을 돌아다닌 10번의 공연 장면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보다, 중간중간 천재성이 드러나거나 하다못해 노래를 연습하는 장면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훈이 울분을 토해내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에서도 어색함이 느껴져 몰입을 방해한다.

불필요한 설명이 과한 것도 아쉽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전주와 광주, 여수를 거쳐 부산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역시 ○○에선 ○○를 먹어줘야 해”와 공연 거리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반복하며 이 작품이 해외 팬들을 위한 ‘한식 먹방 영상’이나 ‘지역 홍보 영상’이 아닌 ‘버스킹 로드 무비’가 맞나 의심이 드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물론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만큼 각 지역의 음식과 고유의 명소를 보여주는 게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굳이 대사와 과도한 음식 클로즈업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덤이다.

이미지: (주)씨네필운

앞서 말한대로 [더 박스]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 당분간 공식 활동이 없을 찬열의 팬들에겐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명곡을 새롭게 느껴보고 싶은 관객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음악뿐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까지 완성도가 높은 음악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한 번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