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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끌릴 만한 요소는 많았지만 작품 자체가 흥미롭진 않았다. 하지만 학교 폭력 이슈가 연예계를 휩쓸 때, [달이 뜨는 강]은 불사조처럼 회생했고, 시청자는 작품 안팎의 스토리와 사랑에 빠졌다. 에디터 또한 뒤늦게 불붙은 팬질로 잠 못 이루고 있다.

이미지: KBS

[달이 뜨는 강]은 『삼국사기-열전』에 수록된 ‘온달 설화’와 최사규의 소설 『평강공주』가 원작이다. 우리에게 전래동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로 친숙한 이야기를 드라마는 완전히 다르게 풀어낸다.

평강공주는 아버지 평원왕을 이어 태왕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계루부 수장 고원표와 귀족 세력의 모함으로 어머니 연왕후는 살해되고, 연왕후가 지원을 요청한 순노부도 수장 온협이 역모죄로 처형되면서 부족은 몰살된다. 평강은 온협의 아들 온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는다. 8년 후, ‘염가진’이라는 살수가 된 평강은 숲에서 밀렵꾼을 혼내주던 약초꾼을 만난다.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며 자신이 공주이며, 약초꾼은 자신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온달이고, 어머니를 죽인 자들은 여전히 왕권을 위협한다는 걸 알게 된다. 평강은 검술 스승 고건의 도움을 받아 공주 신분을 회복하고, 온달에게 무예와 글을 가르치고 순노부를 재건해 세력을 키우려 한다. 온달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각시, 가진을 위해 무예를 익히고, 공주의 원대한 목표를 이룰 검이 되기로 결심한다.

6회가 방영된 3월 2일, 온달 역 배우 지수가 학교폭력 가해자란 폭로가 나왔고, 이틀 후 지수가 이를 인정하면서 [달이 뜨는 강]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사전 제작으로 95% 촬영을 마친 상황에서 닥친 악재였다. 이때부터 작품 바깥의 드라마가 시작됐다. 다음날, KBS와 제작사 빅토리콘텐츠는 VOD 서비스 중단, 기존 촬영 분량 폐기, 배우 교체 후 재촬영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전쟁 장면을 포함한 전체 분량의 60%을 다시 찍기로 한 것이다. 하루 뒤, 나인우가 새 온달로 확정돼 주말부터 촬영에 참여했다. [달이 뜨는 강]은 결방 없이 긴급 촬영과 재편집으로 만든 7, 8회를 방영했고, 나인우의 온달은 9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방영 중에 주연배우가 교체되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미 촬영한 분량을 다시 찍으려면 엄청난 물적, 인적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제작진과 출연진을 응원하는 방법은 드라마를 꾸준히 보는 것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완전히 매혹되었다.

이미지: KBS

[달이 뜨는 강]에서 평강은 울보가 아니라 포부가 크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공주다. 귀족 세력에 맞서 정략혼인을 거부하고, 몰락 귀족인 온달과 혼인해 그를 대장군으로 키운다. 연륜 있는 대신들과 치열하게 정치 싸움을 벌이고, 필요한 경우 직접 칼을 들고 전장에 뛰어든다. 온달은 고구려 최고의 무인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평범하게 살아왔다. 살생을 싫어하는 그가 검을 든 건 오로지 사랑하는 각시를 위해서이며, 평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으려 한다.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된 캐릭터 덕분에 잘 아는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1,500년 전 사랑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평강이 검으로 적을 베어 넘기는 장면에선 액션이, 공주와 귀족이 정치적 술수로 상대를 압박할 땐 정치 드라마가 펼쳐진다. 평강과 온달이 사랑을 속삭일 때는 로맨틱 코미디가, 고건이 평강에게 짝사랑을 거절당할 땐 멜로드라마가 된다. [달이 뜨는 강]에선 모든 이야기가 매우 빨리 전개되면서 관습적으로 중요하게 여길 만한 갈등이 빠르게 해소된다. 32부작을 20부작으로 줄여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야기가 예측대로 전개되며, 시청자가 극을 즐길 만한 여유가 부족하다. 그래서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더 돋보인다. 사극과 시대극을 주로 해온 윤상호 감독은 장면을 꼼꼼하게 빚어내고, 배우들은 연기로 디테일을 채워 넣는다.

이미지: KBS

특히 평강공주를 연기하는 김소현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20부작 드라마를 거의 두 번 찍는, 체력과 정신력 모두 바닥날 만한 상황에서도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왕후, 살수 염가진, 온달의 각시, 공주까지,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에서 14년 차 배우의 관록이 느껴진다. 이제 만 21세인 김소현은 [달이 뜨는 강]으로 원톱 여성 주연으로 우뚝 섰고, 어떤 작품이든 믿고 볼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한편 교체 투입된 나인우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대본 보면서 연기해도 OK!”를 외치던 시청자에게 나인우는 그만의 온달을 선보였다. 그의 해석이 우리에게 친숙한 ‘바보 온달’에 더 가까워서일까? 그의 온달에겐 온갖 애칭이 생겼고, 왜 진작 캐스팅하지 않았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른 감이 있지만 나인우는 ‘올해의 발견’으로 꼽을 만하다.

가장 놀라운 건, 김소현과 나인우가 만나면서 평강과 온달의 러브스토리가 더욱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평강과 온달이 가짜 혼인 후 진짜 부부가 되는 부분부터 함께 연기해야 했는데, 겨우 며칠 동안 일한 사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1편부터 봤든, 뒤늦게 빠져들었든, 지금 시청자는 이 고구려 파워 커플의 열렬한 사랑에 함께 웃고 울고 있다.

이미지: KBS

[달이 뜨는 강]은 조기 종영의 위기를 넘기고 이제 후반부로 들어섰다. 북주 전쟁 후 평강과 온달이 입궁하며 본격적인 정치 싸움이 시작됐고, 엇갈린 인연이 정리되면서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해졌다. 이제 궁금한 건 하나뿐이다. 드라마가 역사를 그대로 따라갈까? 설화엔 전사한 온달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평강이 그를 위로하고 나서야 움직였다고 나온다. 비극이 예정된 연인의 마지막을 어떻게 그릴까 기대하면서도 두렵다. 그러니 지금은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은 수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며, 고구려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사랑 이야기를 즐기려 한다.


서 혜란
서 혜란

장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걸 좋아합니다. 비평과 팬심의 균형을 찾으려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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