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더니 이번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거 있더라. 바로 [크루엘라] 얘기다. [크루엘라]는 비극적인 사연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던 ‘에스텔라’가 남작 부인을 만나 재능을 꽃피우고 파격 아이콘 ‘크루엘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크루엘라]는 자아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악인 중심 디즈니 영화와 차별화된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변하는 과정은 폭주 기관차를 연상시키는데, 종착지서 열차에 남아있는 승객은 둘 중 누구일까?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보통 착한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애는 착한데…’하고 주변에서 감싸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크루엘라는 빈말로도 ‘착하다’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기적이고 남을 이용하는 데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남작 부인이 크루엘라를 고소하려 하지만 ‘법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변호사가 얘기할 만큼 딱 쇠고랑 차기 직전의 일탈을 일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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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그에게 열광하며, 스크린 너머 관객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크루엘라의 숙적인 남작 부인이 재력과 지위를 과신해 갑질과 독설, 모욕을 일삼기 때문이다. “도움이 안 되면 그땐 넌 끝이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내뱉는 남작 부인은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바로 내친다. 그런데도 그의 눈에 띄기 위해 혹은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우리네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다른 이를 깔보던 남작 부인이 크루엘라의 기습 공격에 당황할 때 관객은 주변에 있는 ‘프로 갑질러’를 떠올리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두 번째는 크루엘라의 남다른 복수 방식이다. 주변인의 손을 빌리기는 하지만 크루엘라는 기본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활용해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린다. 거듭해서 기발한 방식으로 반격하는 것도 관객이 크루엘라를 응원하게 만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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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크루엘라가 1970년대 런던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그린만큼 40벌이 넘는 의상을 선보이며 눈을 즐겁게 한다. 복고부터 오트 쿠튀르까지 패션에 관심 있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여기에 음악이 연출을 단단히 받혔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양한 장르의 노래는 감정을 고조시키고 환기하면서 역할을 200% 수행한다. 또한 카메라 연출도 남다른데, 리버티 백화점의 롱 테이크 신은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졌을 때를 연상시킨다. 다소 어지럼증을 유발하나 에스텔라가 속했던 세계와 180도 다른 별나라에 발을 내딛은 그의 심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엠마 스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낮에는 ‘을 중의 을’ 에스텔라를, 밤에는 감췄던 발톱을 드러내는 당당한 크루엘라로 변신한다. 특히 크루엘라의 나른한 몸짓과 어투는 그가 악인이어도 빠져들게 만든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크루엘라의 조력자들도 빠뜨릴 수 없다. 소꿉친구의 타락에 불안한 마음을 눈빛에 고스란히 담은 조엘 프라이와 크루엘라에게 스카우트되어 착실하게 그를 돕는 ‘아티’역의 존 맥크레아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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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토록 독보적인 영화에도 스토리 적으로 아쉬운 점은 있다. 에스텔라가 모친과 헤어져 소매치기 생활을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장면이 사뭇 작위적으로 그려졌다. 영화의 전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면인데 연출이 못내 아쉽다. 게다가 화장과 헤어 스타일을 바꿨다지만 바로 옆에서 비서 일을 겸하는 직원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 밝혀지는 호불호 갈릴 수 있는 반전은 보는 이에 따라 김이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 측면에서 볼 때 수용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며, 애니메이션에 뿌리를 둔 영화라는 점을 기억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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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는 ‘잔혹한 혹은 잔인한’을 의미하는 형용사 ‘cruel’에서 탄생한 이름이다. 주인공은 분장과 환복으로 착한 에스텔라와 나쁜 크루엘라를 오가지만, 근본적으로 이름을 바꿈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볼 수 있다. 잔인하다는 말은 누군가 저지른 끔찍한 행위를 묘사할 때 쓸 수 있지만 가혹한 ‘현실’을 표현할 때도 쓰인다. 에스텔라는 ‘크루엘라 드 빌’이라는 이름을 천명해서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를 벗어나 그토록 바라왔던 현실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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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 없는 크루엘라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복수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 같다. 과연 그 복수가 어디까지 갈지,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중 누가 살아남을 지 숨죽여 보게 된다. 대놓고 나쁜 남작 부인과 크루엘라, 그리고 ‘착한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클리셰를 비트는 엔딩까지. 여러모로 디즈니같지 않은 영화 [크루엘라]는 5월 26일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