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방송가 단골 소재다. 과거에는 구미호가 무시무시한 인간의 적으로 그려졌다. KBS [전설의 고향]이 대표적인데, 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뾰족한 이빨과 손톱으로 사람을 공격했다. 그토록 탐냈던 간을 충분히 먹은 건지 시간이 흐르면서 구미호는 무서운 이미지를 탈피하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친근한 존재가 됐다. 9개의 꼬리를 가진 신비로운 여우 구미호가 나오는 다섯 편의 드라마를 만나보자.

구미호뎐(2020)

이미지: tvN

tvN [구미호뎐]은 여자가 아닌 남자 구미호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드라마다. 이동욱의 비현실적인 얼굴은 설화 속 구미호에게 간을 바쳤던 어리석은 인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평범한 삶을 살길 바라는 구미호 ‘이연’과 어릴 적 자신을 구해준 구미호에게 직진하는 ‘지아’의 특별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이무기, 저승사자, 환생 등의 동양적 소재를 적극 활용해 재미를 더했다. 드라마는 이연과 지아의 해피엔딩을 그리며 최고시청률 5.8%를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간 떨어지는 동거(2021)

이미지: tvN

tvN이 1년 만에 다시 구미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남자 구미호인데, 무려 999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캐릭터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몇 세기에 걸쳐 인간의 정기를 담은 구슬을 이담(이혜리)이 실수로 삼켜버리면서 시작되는 둘의 동거를 그린 이야기다. 여기서 장기용이 연기하는 구미호 ‘신우여’는 되려 간을 빼줄 것 마냥 착하고 자상하다. 앞선 [구미호뎐]이 위태로운 판타지 로맨스를 담았다면 [간 떨어지는 동거]는 달달하고 설레는 로맨스를 담고 있다.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는 장기용을 보면 신우여가 구미호라는 사실을 잊고 그에게 빠지게 된다. ‘심쿵사’를 유발하는 달콤한 로맨스를 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구미호 레시피(2021)

이미지: KBS

전주한옥마을에 사는 구미호의 로맨스를 그린 국악 뮤지컬 드라마로, 사랑에 적극적인 구미호 ‘여희’가 극을 이끌어 간다. 여희는 천 년 전 애달프게 헤어진 정혼자 ‘진우 도령’이 환생한 엄친아 CEO ‘윤호’를 한눈에 알아보지만, 애석하게도 윤호 곁에는 약혼자 ‘선영’이 있다. 선영은 사랑의 본질이 조건이라 믿고 윤호와 초고속 결혼을 추진하는 인물인데, 여기에 선영을 잊지 못하는 소방서 구급대원 ‘승환’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더한다. KBS 1TV 설 특집 드라마 [구미호 레시피]는 네 남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판소리, 민요, 가야금 등 우리의 선율로 엮어내 눈길을 끌었다.

구미호 외전(2004)

이미지: KBS

인간과 구미호족 간의 대결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담아낸 드라마로, 앞선 작품보다 액션에 중점을 두었다. 100억가량의 제작비와 판타지 블록버스터 장르를 앞세워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어색한 CG와 치밀하지 못한 스토리로 아쉬움을 남겼다. 구미호족 전사들과 특수임무부대 간 대립, 가족을 살해한 구미호에 대한 복수,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하는 갈등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풀어냈지만 급격한 결말로 끝을 맺은 점도 흠이다. 그러나 김태희, 한예슬, 전진 등 지금보면 놀라운 캐스팅으로 나름 탄탄한 고정 시청층을 구축하며 시청률 19.5%로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

이미지: SBS

철부지 대학생 차대웅(이승기)과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신민아)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 드라마다. 방영 당시 쟁쟁한 경쟁작과 개연성 부족 등으로 시청률이 다소 부진했지만 화제성만큼은 상당했다. 특히 작중 애교를 부리고 사랑스러움을 뽐내는 ‘미호’는 신민아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구슬이 주인공들 간의 매개체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간 떨어지는 동거]와 비슷하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말 그대로 ‘여우 같은’ 주인공을 보고 싶다면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