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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서인국이 주연을 맡은 판타지 로맨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초월적인 존재 ‘멸망’과 죽음을 앞둔 인간 ‘동경’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인 소재와 예쁜 영상미,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뷰티 인사이드] 임메아리 작가의 조합을 통해 시작 전부터 보장된 로맨스 맛집의 향기를 풍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쩐지 2% 부족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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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탁동경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었을 때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인지, 울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란 동경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하늘을 향해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소리친다. 혼자만의 외침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멸망의 귀에 닿고, 그는 동경의 앞에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멸망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주어진 운명에 따라 영겁의 시간을 버텨야 하는 자신의 존재 의의에 가혹함을 느낀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누군가의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그의 생일에 난생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멸망’을 비는 동경의 목소리를 듣는다. 멸망은 동경에게 진짜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앞으로 남은 100일의 생애 동안 아프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정말로 세상을 멸망시켜달라는 소원을 빌라고 말한다. 동경이 생과 사의 기로에 선 급박한 순간에 멸망이 나타나 손을 내밀고, 결국 동경이 그의 손을 잡으면서 둘의 기묘한 계약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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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과 멸망의 첫 단추는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방향으로 끼워지면서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했다. 사람인 여자주인공과 신적인 존재인 남자주인공의 조합은 이미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 등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보장된 조합임을 증명했고, 로코 장인이라 불리는 박보영과 서인국이 주는 기대감도 상당했다. 멸망이 동경의 손목에 채워준 고통을 없애주는 붉은 실팔찌는 하루에 한 번 손을 잡고 충전을 해야 한다는 부분이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는 부분 등 동경과 멸망 사이의 아기자기한 설정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했다. 여러 가지로 조합은 참 좋은데, 아쉽게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로맨스를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멸망과 동경이 부딪치면서 겪는 서사들이 오히려 로맨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동경이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멸망 때문에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는 부분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페널티가 있다는 점을 나중에서야 드러내고, 동경의 목숨과 병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을 빌미로 계약 이행을 종용하는 멸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경은 멸망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본질을 점차 이해해가는 유일한 사람이 되나, 가까워지려 할 때마다 잔혹하게 벽을 두는 멸망에게 실망하고, 분노를 담은 눈빛과 목소리로 널 사랑해보려 한다고, 네가 죽어봤으면,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동경의 감정선이 뭘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치닫다 보니 4화를 기점으로 변화하는 둘의 관계에 좀처럼 이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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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브 커플의 로맨스는 어떨까? 무려 삼각관계로 등장해 초반에는 메인 커플보다 좀 더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나, 이 또한 밍밍하다. 서로가 첫사랑인 나지나와 이현규의 관계는 풋풋하면서도 아련한 맛이 기대됐다. 하지만 7화에서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가 이현규가 친구들에게 떠밀려 가게 된 유학을 나지나에게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피해버렸기 때문임이 드러나면서 사그라들었다. 이후 이현규는 재회한 나지나에게 제대로 된 사과의 말을 건네지도, 지금의 마음을 제대로 들어보려 하지도 않은 채, 내가 아직 좋아하니 자신을 만나야 한다며 다가서기만 해서 남은 매력마저 반감된다. 그렇다고 나지나와 차주익의 관계도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이현규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차주익은 나지나를 측은하게 여기고 첫 만남에 키스를 건네지만, 그의 과거는 이입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이렇다 할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지나가 두 사람에게 큰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엔딩까지 이제 4화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는 부족한 로맨스 서사를 배우들의 매력적인 케미스트리와 연기로 채워 넣었다는 인상이 강한데, 남은 이야기에서 좀 더 두근두근 설레는 판타지 로맨스를 선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