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범죄, 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에 길들여진 K-드라마에 모처럼 무공해 작품이 나와 눈길을 끈다. 배드민턴계의 아이돌을 꿈꾸는 10대들의 성장을 그린 [라켓소년단]이 주인공이다. 배신과 음모, 악인이 없이 등장인물 모두가 선한 마음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다. 너무 착하고 순해서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오히려 무해한 요소들이 깨알 같은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라켓소년단]은 어떻게 순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세 가지 이유로 살펴본다.

아이들의 연기에 아이돌처럼 열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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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소년단]은 땅끝마을 해남을 배경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중학교 배드민턴부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른이 아니라 전국체전을 목표로 하는 중학생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걱정도 컸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배우들이 16부작의 서사를 이끌 수 있을까? 다행히도 우려는 1회 시작 10분 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야구를 그만두고 시골에 온 주인공 해강을 비롯해 해남서중의 배드민턴 3인방 윤담, 우찬, 용태 등이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해강 역을 맡은 탕준상은 장난기 섞인 허세와 능청스러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아닌 척하면서도 친구들을 위하는 모습에서는 흐뭇함을 자아낸다. 용태 역을 맡은 김강훈은 [동백꽃 필 무렵], [마우스] 등에서 쌓아온 연기력을 아낌없이 발휘한다. 특히 현지인 수준의 사투리와 여리고도 솔직한 감정 연기가 극의 재미를 책임진다. 다른 배우들도 이야기에 녹아드는 안정감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어른 배우의 부재를 말끔히 지운다. 오히려 아이들의 비중이 높기에 이야기의 진행이 부드럽고, 케미스트리가 더 돋보인다.

실감 나는 배드민턴 경기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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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을 소재로 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컸다. 중요하게 다뤄야 할 스포츠는 뒤로 하고, 인물들의 연애나 코미디에만 빠지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다행히 [라켓소년단]은 제목에 걸맞게 소재를 활용하고 수준 높은 경기 장면을 선보이며 흥미를 더한다.

먼저 주요 인물들의 성장을 배드민턴과 밀접하게 연결한다. 한때 천재적인 실력을 가졌지만 지금은 허세만 가득한 해강이 배드민턴의 특정 기술을 연마하며 전진하는 모습과, 부모의 반대로 운동을 그만둘까 생각한 우찬이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갈고닦아 아버지 앞에 당당히 서려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빚어낸다. 배드민턴이란 꿈을 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공감가게 그려내면서 자연스럽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6회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드민턴 경기 장면도 수준급이다. 배우들은 배드민턴의 고난이도 동작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카메라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특히 계속되는 공방전 속에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물들의 모습들을 다채롭게 포착해 실제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대로 된 경기 장면 하나 보여주지 못했던 동종 장르의 많은 드라마들이 했던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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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소년단]의 또 다른 매력은 작품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한다는 점이다. 해남서중 멤버들이 패배와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성장 원동력을 찾아 더 발전하려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특히 주인공 해강은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훌륭한 선수로, 더 나아가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간다. 과도한 눈물과 억지 감동 없이 부원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담아내 작품의 진심이 편안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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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장만 그리지 않는다. 어른들도 함께 자란다. 해강의 아빠이자 해남서중 배드민턴 코치 현종은 처음에는 자신의 안위만 신경 쓰는 못난 어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보며 코치로서 자신을 뒤돌아보고, 그 역시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워낙 실수가 많아 민폐 캐릭터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지만, 적어도 변화의 의지를 가진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이 놓인다.

이처럼 드라마는 성장의 메시지를 특정 세대, 특정 인물에게 국한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에게 열어둔다. 이 과정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의미를 강조해 주제의식을 강화하고, 캐릭터 모두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내 극의 흡입력을 높인다.

[라켓소년단]은 반환점을 돌고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해강과 세윤의 썸은 곧 결말을 맞을 듯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한 해남서중의 도전도 멈추질 않을 것이다. 다만 5회에서 불거진 인도네시아 폄하 논란과 중심 이야기와 어울리지 못하는 농촌 주민 에피소드 등은 더 나은 완성도를 위해 개선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모처럼 만난 기분 좋은 드라마다. 후반부에서도 이처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계속 유지되길 바라며, 라켓소년단의 전국 제패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