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넷플릭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제작 소식만으로도 반가웠다. [순풍 산부인과], [하이킥], [논스톱] 등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안방극장을 웃음으로 사로잡았던 시트콤이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다 보고 난 지금, 기대보다 아쉬움이 크다. 개그 타율이 전반적으로 약하며, 몇몇 에피소드는 아무리 시트콤이라고 해도 억지스럽고 작위적이다. 화려한 카메오 군단도 스토리에 스며들지 못한다.

다행히 6화 이후부터 캐릭터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뒤늦게 재미가 터지지만, 정통 시트콤의 부활을 바라는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의 시즌 2가 꼭 나오길 바라는 건 왜일까? 지금 여기서 멈추기에는 작품의 가능성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3가지로 풀어본다.

12화로는 부족한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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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대한민국의 한 대학 국제 기숙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국적과 개성을 지닌 청춘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담았다. 시트콤은 타 장르보다 시동이 늦게 걸린다. 지금 전설로 기억된 시트콤도 방영 초기에는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부족했다.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작품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캐릭터들의 개성을 살려줘야 진짜 재미가 붙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총 12화로 끝을 맺는데, 앞으로 할 이야기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현저히 적은 분량이다. 주인공 세완과 제이미는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고, 기숙사에서 쫓겨 난 현민의 거처는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다. 이야기가 더 뻗어 나갈 요소가 많아 고작 12화로 막을 내리기엔 지금까지 쌓아 올린 설정이 아깝다.

캐릭터에게 이제 막 애정이 느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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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분량이 부족해서 시즌 2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에게 이제 막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트콤은 캐릭터의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작품을 보면 특정 에피소드보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성격이 먼저 떠올라 웃음을 짓게 한다. 사람도 처음 만나면 서먹하지만 계속 볼수록 정이 든다고, 시트콤 속 인물 역시 계속되는 좌충우돌 속에 결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솔직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의 캐릭터는 기대보다 걱정이 컸다. 국제기숙사가 배경이기에 외국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말이나 연기가 어색하면 어쩌지 싶었다. 다행히 극의 중심을 끌어가는 카슨 알렌, 테리스, 요아킴, 민니 모두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에 밀착한다. 특히 이들에게 한국사회의 특징을 부여해 코믹함을 높인다. 예를 들어 카슨은 한국식 꼰대 같은 모습으로 재미를 자아내고, 요아킴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행동들로 웃음을 유발한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이들이 외국인이라는 생각보다 어느 대학교에나 흔히 있을 친구처럼 느껴지며 보는 이와 거리감을 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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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현민의 활약은 작품을 소위 멱살잡고 이끌어갈 정도다. 여러모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그 속에서 빚어지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모습들로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나면서 웃음의 강도가 커진다. 낯선 첫 만남을 뒤로하고 등장인물에게 이제야 애정이 생겨 여기서 끝나기에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그리울 듯하다.

웃음이 더 돋보일 수 있는 짠함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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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과격한 제목의 탄생은 주인공 세완에게 있다. 엄마는 빚쟁이, 아빠는 사기죄로 교도소에 있는 세완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 캠퍼스에서 많은 이들이 청춘의 낭만을 이야기할 때, 세완은 차라리 지구가 망해서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한다. 세완이 처한 상황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지만,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제이미가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이 둘이 함께하는 에피소드가 풍부해진다.

한국에서 성공한 시트콤 대부분에는 개그뿐 아니라 슬픔이 스며있다. 처연한 감정이 드라마 전반에 묻어 있기에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꿋꿋한 웃음이 돋보였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역시 갖가지 청년 문제로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대학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서서히 꺼낸다. 게다가 등장인물 대부분이 홀로 타국에 온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눈물과 웃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요소는 충분하다. 시즌 1에서는 코믹 일변도로 진행했지만, 다음 시즌에서는 분명 여러 감정을 자연스럽게 교차해 더 깊이 있는 서사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가 지금의 장점은 유지하고 아쉬운 점은 보안해, 더 나은 시즌 2로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