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범죄 드라마 하면 우울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분명 사건을 뒤쫓으며 윤곽을 좁혀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호흡을 늦춘다. 해결이란 목표에 직진하기보다 비극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왜’ 그 같은 사건이 일어났는지, 그로 인한 여파를 조용히 탐색한다. 해결 과정이 아닌 행동과 동기에 더 집중하니 자연스레 극 분위기는 낮게 가라앉는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그렇지 않지만, 고집스럽고 냉소적이며 음울한 특유의 분위기가 영국 수사물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가 아닐까. 그중 놓쳤을지 모를 매력적인 범죄 드라마를 소개한다.

힌터랜드(Hinterland)

이미지: 넷플릭스

[월랜더], [루터], [브로드처치] 등 수사물에서 흔한 어두운 형사의 힘겨운 여정을 선호한다면 지나치기 아쉬운 드라마다. [힌터랜드]는 [브로드처치]처럼 외부에서 온 문제적 형사와 토박이 형사를 중심에 세우고, [월랜더]와 [인덴버]처럼 에피소드마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는 구조를 취한다.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세우는 마티아스 경감이 마주하는 사건들은 예사롭지 않다. 저마다 슬프고 괴로운 사연이 가득하다. 덕분에 암울하게 가라앉은 영드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웨일스의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과 유령처럼 부유하는 처연한 정서가 대비돼 우울함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넷플릭스에서 7월 31일까지만 서비스하니 관심 있다면 서두르자.

크리미널 저스티스(Criminal Justice)

이미지: 캐치온

[크리미널 저스티스]는 하반기 방영 예정인 김수현, 차승원 주연의 드라마 [어느 날]의 원작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벤 위쇼와 맥신 피크가 각각 시즌 1, 2의 주인공으로 나서 피고인의 눈을 통해 본 형사사법제도의 모순점을 고발한다. 리즈 아메드 주연의 HBO 시리즈 [더 나이트 오브]로도 리메이크된 시즌 1은 평범한 청년이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변화하는 인물의 모습을 차가운 현실과 맞물리며 흥미롭게 그려낸다. 시즌 2는 겉보기엔 완벽한 가정을 이룬 것 같은 여성이 배우자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내용이다. 이 재판 역시 부조리로 가득하다. 변호사와 검찰은 사건을 유리하게 해석하기만 할 뿐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형사사법제도라는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담아내 2008년 BAFTA TV 어워드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최근 캐치온에 전편 공개됐다.

리버(River)

이미지: BBC One

눈앞에서 파트너를 잃은 형사가 내막을 추적하는 과정을 큰 줄기로 삼은 범죄 드라마다.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지독하게 고독한 형사 존 리버로 등장하는데, 그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유일무이한 존재나 다름없던 파트너 스티비를 비롯해 죽은 자들이 그 앞에 나타나고 심지어 대화도 나눈다. 얼핏 심령물과 만난 수사 드라마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존 리버라는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을 따라가며 상실과 슬픔을 탐구하는 것에 가깝다. 기존의 범죄 드라마보다 풍부한 감정적 풍경을 선사하는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연기가 대단하다. 드라마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I Love To Love”(티나 찰스)가 귓가에 맴돌며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왓챠에서 서비스 중이다.

콜래트럴 이펙트(Collateral)

이미지: 넷플릭스

캐리 멀리건 주연의 4부작 드라마 [콜래트럴 이펙트]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등장하지만,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범인의 존재를 일찌감치 밝히고, 어떻게 해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 배경에 주목한다. 불법 이민자인 피자 배달부의 죽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각종 차별과 혐오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회 문제를 드러낸다. 그 중심은 난민을 대하는 영국의 이중적인 태도다. 불법 이민을 방관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면서도 난민을 배척하는 실상을 그려낸다. 이중잣대는 위로 올라갈수록 뿌리 깊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강해 수사물의 재미는 약할 수 있으나, 철저히 사생활을 배제하고 일에만 집중하는 글래스피 형사 등 여성 캐릭터를 중심 서사에 고르게 배치해 신선함을 선사한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마르첼라(Marcella)

이미지: 넷플릭스

노르딕 누아르 스타일의 범죄 드라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기억에 문제가 생긴 주인공이 자신과 얽혔을지 모를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안나 프릴이 일과 사생활 양쪽에서 큰 압박을 받는 문제적 인물 마르첼라를 강렬하게 그려낸다. 개인적인 비극에서 비롯된 고통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습이 처절하고 지독하게 다가온다. 시즌 1은 결혼생활에 파국을 맞은 마르첼라가 다시 나타난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이야기를, 시즌 2는 전 남편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뒤늦게 밝혀진 아동 연쇄살인을 쫓는 과정을 담는다. 작년에 공개된 시즌 3은 죽음으로 위장한 마르첼라가 새 신분으로 범죄 조직에 잠입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컨페션(A Confession)

이미지: ITV

영국에서 논란이 분분했던 실화를 옮긴 6부작 드라마다. 마틴 프리먼이 문제적인 사건의 주인공 스티브 풀처 형사로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컨페션]은 2011년 발생한 한 여성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에 초점을 맞춘다. 늦은 밤 귀가하던 여성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경찰은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빠르게 용의자를 좁힌다. 수사를 이끌던 스티브 형사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실종자를 찾기 위해 원칙을 져버리고 위험한 선택을 한다. [컨페션]은 유명 사건을 자극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의 경력과 맞바꾼 한 형사의 판단에 공을 들인다. 그의 선택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며,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서비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