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세계를 K-좀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한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의 특별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이 최근 공개됐다. [킹덤: 아신전]은 시즌 2 엔딩에서 짧지만 묵직하게 등장한 아신의 이야기로, 조선을 뒤덮은 거대한 비극이 시작되는 과정을 다룬다. 아신 역으로 깜짝 출연하며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던 전지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안티 히어로에 걸맞은 진중한 면모를 뽐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킹덤을 만나 ‘인외의 존재’ 생사역을 탄생시키는 장본인이 되기 전에, 전지현 본인이 바로 그 인외의 존재로 직접 변신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동서양을 통틀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물, 인어를 다룬 SBS [푸른 바다의 전설 (2016~2017)]이다.

이미지: SBS

판타지 로맨스 [푸른 바다의 전설]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수록된 현령 김담령과 인어의 설화에 상상력을 더해 제작됐다. 전지현은 육지에서 살게 된 멸종 직전의 인어 심청으로, 이민호는 외모와 두뇌를 모두 갖춘 사기꾼이자 심청과는 전생의 인연으로 묶인 남자 허준재로 분했다. 전지현이 김수현과 호흡을 맞췄던 SBS [별에서 온 그대 (2013~2014)]보다는 시청률이 다소 낮은 편이었으나, 그동안 미디어의 조명을 거의 받지 않았던 전통 설화 속 인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참신한 작품이었다.

종족을 초월한 사랑? ‘전지현-이민호’라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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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인간 천송이로 외계인 도민준을 만났고,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인어 심청으로 분해 인간 허준재를 만났다. 입장만 바뀌었을 뿐 서로 종이 다른 캐릭터 간의 연애 구도는 동일하다. 전지현은 인간들과 어울리며 삶의 이치와 진정한 행복을 배우는 심청 특유의 순수함을 가감 없이 표현하며, 오만한 허당끼의 소유자 천송이와 180도 다른 매력을 뽐냈다. 이민호 역시 [꽃보다 남자 (2009)], [상속자들 (2013)]에서 보여준 냉소적인 재벌 2세 이미지를 벗고, 준재가 청과의 사랑을 통해 내면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한 것처럼 배우로서 또 한 번 도약했다.

재미와 긴장감 모두 잡은 준수한 환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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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의 전설]은 언뜻 보기에 타임슬립 드라마 같지만, 인물들의 관계가 전생과 현생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환생물이다. 주조연 캐릭터들은 전생과 비슷한 인격을 타고 난 경우가 대부분이며, 현생에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 뜻밖의 선택을 내리며 심장을 졸이게 했다. 특히 전형적인 중간급 빌런으로 보였던 조남두(이희준)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준재를 도와주면서 최종보스 강서희(황신혜)를 처단했을 때, 그리고 청의 신비한 능력으로 키스할 때마다 기억을 잃었던 준재가 마지막회에서 극적으로 기억을 되찾고 청을 다시 만났을 때가 그랬다. 비극적인 전생과 달리 현생에서는 준청 커플이 결국 행복을 찾지만, 이를 확인할 때까지 시청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숱하게 오간 셈이다.

전생과 현생 모두 준재에게 차인 차시아(신혜선)가 연하남 태오(신원호)와 밀당을 벌이다 결국 맺어지거나, 학력 콤플렉스를 가진 부자 안진주(문소리)가 전생의 상전이었던 모유란(나영희)을 입주 도우미로 부리면서도 되려 쩔쩔매는 모습들은 유쾌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야기에 감칠맛 더한 명품 조연·카메오 군단

청과 준재의 가족, 동료 또는 숙적으로서 전생과 현생을 오가며 준청 커플을 돕거나 해치고자 애쓰는 주변 캐릭터들도 빛을 발했다. 황신혜, 나영희, 성동일, 이희준, 문소리, 신혜선, 신린아, 이지훈 등 세대를 아우른 배우들은 역할과 비중에 관계없이 극에 상당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황신혜와 성동일은 불우한 고아로 자란 이들임에도 연민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지독한 악인으로 분해, 사랑의 고난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개연성을 더했다. 미워할 수 없는 속물이 된 문소리, 청의 첫 인간 친구이자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신린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TV를 시청하는 틈틈이 괴로움과 지루함이 밀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차태현, 홍진경, 조정석, 정유미 등 특급 카메오들도 극의 유머를 풍성하게 꽃 피웠다.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