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분노(?)를 참지 못한 여성들의 아찔한 살인극이 더 화려한 색채로 단장하고 돌아왔다. [와이 우먼 킬] 시즌 2는 올여름 파라마운트 플러스를 통해 최초 공개됐으며, 국내에서는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 저택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 시간대의 이야기를 교차 나열한 시즌 1과 달리 [와이 우먼 킬] 시즌 2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의 1949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스토리의 풍성함과 긴장감은 첫 시즌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시즌 2의 세 주인공 알마, 리타, 디가 시즌 2의 ‘피칠갑’을 첫 화부터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엮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인정 욕구의 화신 ‘알마’

이미지: Paramount+

평생 평범하게만 살아온 전업주부 알마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알아봐 주는 타인의 시선에 목마른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마을의 상류층 여성들로 구성된 ‘정원 클럽’은 인생 최고이자 유일한 꿈이다. 하지만 알마의 순수한 바람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나타났으니, 남편 버트럼이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방식으로 불치병 환자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끔찍한 사실이다. 하지만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알마는 코앞에 다가온 정원 클럽 입성을 위해 남편의 비밀을 가슴에 묻고, 급기야 이웃인 요스트 부인의 시체를 유기하며 남편의 동업자(?)가 되고 만다.

4화에서 알마는 결국 리타와 다른 부인들의 환심을 사며 고대하던 정원 클럽의 멤버가 된다. 하지만 리타가 자신의 연적 디가 알마의 딸임을 막판에 알아챈 이상, 알마-디 모녀가 얼마나 교묘하고 잔인하게 리타에게 복수를 당할지 걱정되는 상황. 사실 진짜 오싹한 점은 알마가 이미 손에 피까지 묻혀 가며 욕망을 본격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순진한 눈망울로 인정을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리타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응수할 게 누가 봐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것이 [와이 우먼 킬]이니까!

모든 것을 갖고 싶은 물욕의 화신 ‘리타’

이미지: Paramount+

80대 부자 남편을 둔 귀부인 리타는 할리우드 배우만큼 빛나는 유명 인사로 알마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여왕이 부럽지 않을 것 같은 삶이지만, 리타는 오만하고 무례한 남편 카를로에게 받지 못하는 애정을 내연남 스쿠터, 그리고 정원 클럽의 리더로서 소유한 권력으로 대신 채우는 신세다. 설상가상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졸중 환자가 된 카를로를 자연스럽게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고, 카를로의 딸이자 앙숙인 캐서린이 아버지 간호를 이유로 집에 눌러앉았다. 게다가 스쿠터마저 알마의 딸 디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리타는 극중 누구보다도 정신적 한계에 다다라 있다.

온갖 사정으로 속이 지치고 허해진 리타가 모두에게 친절하고 온화한 알마에게 마음을 열면서 분위기는 훈훈해지나 싶었다. 그러나 알마와 디의 관계를 목격하고 차갑게 돌변한 리타의 얼굴로 4화가 끝나면서 앞으로 엄청난 파국이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캐서린을 유혹해 동침하라는 리타의 제안을 거절했던 스쿠터가 알거지가 된 상태에서 캐서린의 호감을 얻었다. 앞으로 스쿠터-캐서린의 애정 전선이 과연 리타의 소원을 이뤄 줄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리타의 발목을 잡을 진정한 적수는 각성한 알마가 될 것 같지만…

사랑받고 싶은 애정욕의 화신 ‘디’

이미지: Paramount+

알마-버트럼 부부의 딸 디는 알마와 리타에 비해 무게감은 떨어져 보이나, 그의 야무진 성격이 향후 전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캐릭터다. 알마와 리타가 그렇듯 디 역시 이중성을 지닌 인물이다. 엄마의 꿈을 지지해주는 착하고 의젓한 딸인 동시에, 배우를 꿈꾸는 무일푼 제비족인 스쿠터와 데이트하기 위해 변장까지 불사하는 열정적인 사랑꾼이다. 디가 스쿠터의 무능력과 리타와의 관계를 알면서도 그와 사귄 이유는, 타고난 것에 순응하며 살아온 알마와 달리 ‘잘생긴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어 나도 똑같이 사랑받고 싶다’는, 신세대다운 반항심 때문이었다.

이처럼 애정 결핍에서 시작된 디의 좌충우돌 연애사는 스쿠터와 자신의 밀월 관계를 밝혀낸 사립탐정 번과 엮이면서 새로운 분기점을 맞는다. 하지만 백인 부모인 알마와 버트럼이 흑인인 번을 딸의 연인으로 순순히 인정할 가능성이 낮고(극중 배경인 1949년은 인종차별이 공공연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디에게 원한을 가진 리타가 디의 가족뿐만 아니라 번에게도 마수를 뻗을 게 뻔하다. 어쨌든 만만히 당할 성격은 절대 아닌 디가 어머니 알마와 연합하여 리타를 꺾을지, 혹은 부모와 도움 없이 자기만의 힘으로 사랑을 지켜낼지 여부도 흥미진진한 시청 포인트.

이미지: Paramount+

[와이 우먼 킬] 시즌 2가 시즌 1과 확연히 구분되는 원인은 살인의 주체인 여성들의 위치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 훨씬 가깝다는 점이다. 시즌 1의 주인공 베스 앤, 시몬, 테일러의 경우 제각각 사정이 달랐지만 상대를 제거해야 할 이유는 매우 타당했다(?). 실제로 이들 셋 모두 남편의 불륜으로 심적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 2 주인공들을 살펴보면 리타의 경우, 비록 남편과의 사이가 나빠도 의붓딸이 한 집에 사는 상황에서 섣불리 살해를 시도한 것은 경솔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알마가 눈에 띄는 죄도 짓지 않은 요스트 부인을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 것 역시 시즌 1에 비해 통쾌함과 환호를 보내주기엔 무리가 있다. 초반부터 버트럼의 선의를 가장한 연쇄살인이 드러난 것도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살인극’이 모토라 할 수 있는 이 시리즈의 힘을 다소 떨어뜨리지 않았는지 우려가 된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활약은 아직 숱하게 남았고, 다양해진 인물만큼 경우의 수도 더욱 복잡해졌으니, [와이 우먼 킬] 시즌 2를 정주행 할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에디터 봄동: 책, 영화, TV, 음악 속 환상에 푹 빠져 사는 몽상가. 생각을 표현할 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내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