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졌던 경찰대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나왔다. 차태현, 진영, 정수정 주연의 KBS 월화드라마 [경찰수업]이 그 주인공이다. 온몸을 다 바쳐 범인을 잡는 형사와 해커 출신 학생이 경찰대학교에서 교수와 제자의 신분으로 만나 공조 수사를 펼치는 이야기다. 몇 년 전 개봉해 큰 성공을 거뒀던 영화 [청년경찰]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경찰수업]은 교수와 학생의 독특한 수사 케미스트리와 캠퍼스 연애담을 더해 시청자에게 다가선다.

이미지: KBS

드라마는 제목처럼 열정적인 대학 신입생들을 생각나게 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건네며 힘차게 출발한다. 별다른 꿈도 없이 지냈던 평범한 고등학생 선호는 경찰대학 지망생 강희에게 첫눈에 반한다. 선호는 자신과 달리 확고한 목표가 있는 강희의 의지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듯, 그 역시 경찰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다진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정하는 레퍼토리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극의 유쾌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더한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선호와 강희의 썸타기는 그들의 좌충우돌 실수담처럼 코믹하고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주인공이 꿈과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유동만은 경찰의 험난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만은 자신의 동료와 연인이 사건 현장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과거를 가졌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치열하게 범인을 쫓는다. 주변 사람에게 무뚝뚝하고 늘 신경질을 내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사람들을 챙기고 도와주면서 시청자와의 거리감을 좁혀간다. 차태현의 넉살 좋은 연기가 동만의 성격과 잘 어우러져 그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드라마가 젊은 배우들 위주의 캠퍼스 러브스토리로 치우치지 않게 중심도 확실하게 잡아준다.

드라마는 주요 캐릭터들의 개성을 탄탄하게 다진 뒤 4화부터 분위기를 전환한다. 동만과 선호는 형사와 범죄자로 만난 악연 때문에 경찰대학에 와서도 평행선을 달렸는데,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이때부터 드라마는 경찰대학에서 벌어지는 연애담과 범인잡기를 적절히 버무리며 새로운 재미를 건넨다. 즉, 경찰대학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두 인물이 쫓는 사건의 중요한 단서로 다가온다. [경찰수업]은 청춘 드라마의 웃음과 사랑은 물론, 수사극의 스릴도 함께 잡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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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그 야심은 너무 큰 듯하다. 다른 두 장르를 결합하기 위한 일부 설정이 몰입감을 해친다. 선호와 동만이 실은 온라인 채팅창에서 서로를 위로했던 끈끈한 사이였다든지, 큰 부상을 입고 사경을 헤맸던 동만의 동료 철진이 갑자기 회복해 경찰대학에 부임한다든지, 억지스러운 설정이 연이어 나타난다. ‘스토리가 가볍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을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도 허술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호는 불법 해킹을 했던 범죄자다. 동만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이야기의 극적 장치를 위해 선호를 쉽게 용서하고 풀어준다. 심적으로는 이해하나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다. 이후 선호가 경찰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이나 그곳에서 탈락의 위기를 넘기는 모습을 두리뭉실하게 표현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선호를 남몰래 돌봐주는 동만의 행동 역시 츤데레 감정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많이 어색하다.

동만과 선호 외에 눈에 띄는 캐릭터가 없는 점도 실망스럽다. 특히 현재까지 오강희를 다루는 방식이 안타깝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범죄자임에도 경찰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정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6화까지 강희의 역할은 선호와 썸타기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강희는 향후 동만과 선호의 수사에 합류해 앞으로의 비중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매력적으로 그릴 수 있는 인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점은 드라마가 이야기의 한계를 스스로 긋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여러 아쉬움 속에서도 [경찰수업]은 나름의 재미를 담보하며,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범죄 수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청춘들의 패기 넘치는 에너지가 있어 시청자의 입장에서 다가가기 편하다. 수사극과 로맨스 두 마리의 도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드라마의 야망이 현재까지는 힘에 부치는 감이 있지만, 지금의 약점을 보완한다면 만족도는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