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대장정을 마치고 10월 15일(금)에 막을 내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축소 진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전 세계 70개국 223편의 영화를 100% 극장 상영하며 영화 팬들을 맞이했다. 영화제 초반의 열기를 이끈 OTT 화제작 [지옥], [마이 네임], [언프레임드]를 포함해 8편의 작품을 관람한 후기를 소개한다.

지옥

이미지: 넷플릭스

예상보다 더 기괴하고 지독하면서도 흥미롭다. 우락부락한 비주얼의 사자들이 사망 일자를 선고받은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그들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인해 사회가 광기 가득한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인물 개개인의 서사를 흥미롭게 펼쳐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특히 새진리회 의장 역을 찰떡같이 소화한 유아인과 이에 맞서는 변호사 역 김현주, 지옥행 선고를 받은 인물을 맡은 김신록 등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총 6부작 중 3개 에피소드를 공개했는데, 후속작을 위해 쿠키 영상까지 겸비한 영화 한 편 같은 인상을 준다. 폭력적인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니 유의할 것. (에디터 원희)

마이 네임

이미지: 넷플릭스

한소희가 곧 개연성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에 잠입한 주인공의 복수극을 그린 [마이 네임]은 그야말로 ‘한소희 원 우먼 쇼’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언더커버, 복수, 누아르라는 키워드는 사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접한 것들이지만, 이를 여성 서사로 풀어내니 상당히 흥미롭다. 한소희가 대부분 직접 소화했다는 액션신들은 ‘저러니 실신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박력 넘치고 처절하며, 또 세련됐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인간수업] 김진민 감독의 작품이고, 또 소재가 소재인지라 보기 불편한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마이 네임]까지, 또 한 번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가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에디터 영준)

언프레임드

이미지: 왓챠

박정민, 최희서, 이제훈, 손석구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관객과 만났다.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인 [언프레임드]는 네 배우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단편 영화 프로젝트다. 먼저 박정민의 [반장선거]는 초등학교 반장선거 과정을 힙한 갱스터 무비를 보듯 긴장감 있게 펼치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씁쓸한 현실을 드러낸다. 싱글맘 모녀의 오후 한때를 그린 최희서의 [반디]는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사람에 대한 다정한 태도가 기분 좋게 다가오는 영화다. 이제훈의 [블루해피니스]는 주식에 빠진 취준생 청년의 우울한 일상을 통해 꿈보다 돈이 우선인 물질만능주의의 현시대를 비춘다. 손석구의 [재방송]은 네 영화 중 가장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명 배우 조카와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이모가 결혼식에 가는 동안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다채롭고 유쾌하면서도 신중한 위로가 담겼다. (에디터 현정)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이미지: BIFF

배우 전종서의 말대로, 힙한 감성을 물씬 풍기는 음악과 영상으로 가득한 미국 인디 영화다. 타인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겪는 일을 그린다. 영화를 오롯이 끌고 가는 것은 단연 전종서의 연기다. [콜]의 영숙을 연상시키듯 우리에서 풀려난 야수 같은 모습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으로 나와서 배울 것이 많은 순진무구한 아이의 모습까지, 전종서의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며 주인공 모나리사 리가 겪는 여정을 보여준다. 모나가 퍼즈, 보니, 찰리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관계를 쌓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재미를 불어넣으며,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크레이그 로빈슨, [데드풀]의 에드 스크레인 등 익숙한 배우들의 색다른 모습을 만나는 것도 이 영화의 즐거움이다. (에디터 원희)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이미지: BIFF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은 BL물을 좋아하는 사에와 남자를 사랑하는 준, 남모를 비밀을 가진 두 사람의 연애를 그린다. 그러나 예쁘장한 포스터와 두 배우의 비주얼, 그리고 제목만 보고 뻔한 학원 로맨스물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사에와 준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성별을 초월한 사랑 혹은 우정을 그리며 긴 여운과 감동을 안겨준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야마다 안나라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어 더욱 값진 영화로 다가오는데, 당분간 이 배우의 이전 작품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에디터 영준)

포비든

이미지: BIFF

HBO 아시아의 [포비든]은 영화 [랑종]처럼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스산한 분위기를 드리우는 태국의 시골마을을 미스터리의 무대로 내세운다.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 눈이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면서 어둡고 섬뜩한 오랜 비밀에 다가서는 여정이 주된 스토리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외딴 마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 주인공, 외부에 배타적인 수상쩍은 마을 사람들과 토속신앙 등 [포비든]은 음산한 긴장감이 있는 호러 미스터리의 요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깊은 숲속이 주는 불길한 공간감이 기대했던 것만큼 드러나지 않고, 전개는 느리고 산만해 초반 집중력이 약하다. 물론 8부작 중 첫 두 에피소드만 선보였기에 향후 전개에서 다소 미진했던 첫인상이 충분히 바뀔 수 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도 서비스가 되나요? (에디터 현정)

배니싱

이미지: BIFF

올가 쿠릴렌코와 유연석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다. 피터 메이의 소설 『더 킬링 룸』을 원작으로, 한국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한 프랑스 법의학자가 한국 경찰의 의뢰를 계기로 장기밀매 조직이 연루된 살인사건에 얽혀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진과 시놉시스는 흥미롭지만, 기대가 컸던 걸까, 월드 프리미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영화의 완성도가 많이 아쉽다. 장기밀매 조직을 추적하는 스릴러는 너무 허술해서 긴장감이 없고,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이야기에 어울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한국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한국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줘서 국적이 모호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에디터 현정)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이미지: BIFF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정부 시스템은 사람들을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을 각색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9년 후 손발이 묶인 채 굶어 죽은 시신이 연이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다. 일본의 유명 배우 사토 타케루가 연쇄살인 용의자로, 아베 히로시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분해 장르적 긴장감을 공고히 하지만, 범인의 정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은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빈곤한 현실을 화두로 꺼내 들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영화가 비추는 비극적인 현실은 동일본 대지진에만 한정되지 않고, 2년째 코로나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에디터 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