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너를 닮은 사람은 소위 ‘쎄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극의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느낌 같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답답한 분위기와 자극적인 소재에 지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시선이 간다.

이미지: JTBC

흔히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라고 말한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만약 그 주인공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면 우리는 과연 상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너를 닮은 사람은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해, 한 여자의 욕망으로 인해 ‘자기 인생의 조연’으로 밀려나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정희주(고현정)가 시신을 유기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곤 이내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이전으로 시점을 돌린다. 성공한 화가이자 작가, 재벌가 며느리인 희주는 어느 날 딸이 학교 미술선생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학교에서 마주한 교사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지만, 희주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희주는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교사에게 딸이 당한 것처럼 똑같이 뺨을 때린다.

며칠 후 미술선생은 희주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러더니 무릎을 꿇고 “언니, 오랜만이에요”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구해원(신현빈). 한때 희주의 그림 선생이자 사이가 각별했던 동생, 그리고 불륜 상대였던 서우재(김재영)의 연인이다. 희주에게 당황스러운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난한 사랑’이 아닌 ‘풍족한 현실’을 택하기 위해 버리고 떠난 서우재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채 나타난 것. 세 사람의 재회는 희주에겐 지금 누리는 행복과 평화를 빼앗길 위기이면서, 반대로 해원에겐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이에 대한 복수의 시작이다.

‘치정’과 ‘복수’, ‘불륜’과 ‘배신’, 여기에 ‘살인’까지.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막장 코드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너를 닮은 사람은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던 작품처럼 자극적인 소재에 집어삼켜진 드라마와 다르다. 대신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과거를 서서히 풀어나가며 미스터리 장르에서 느낄 법한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묘사해 기존의 ‘뻔한 막장 드라마’들과 차별화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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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감정 묘사에서 돋보인 디테일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청자로서의 단순한 공감이 아닌, 이들의 감정 자체에 휘말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이 ‘지키기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희주’가 되거나, 반대로 ‘되찾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해원’이 되는 경험 말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배우들의 공이 크다. 극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모습을 과하지 않고 절제된 연기로 풀어낸 고현정과 신현빈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토록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러한 감정적 몰입이 득이 아닌 실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아무리 미스터리에 집중하고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해도, 소재가 소재인 만큼 극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거나 다름없다(해원에게 몰입하면 더더욱 그렇다). 작품의 큰 줄기인 ‘희주를 향한 해원의 복수’가 시원하게 진행되고 있지 못하는 것도 영 답답하다. 여기에 작품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는 기존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주어 중도하차 사유가 되거나, 새로운 시청자 유입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너를 닮은 사람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풀어야 할 미스터리는 많이 남았고, 이제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되찾으려는 해원의 목표는 희주와 우재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생겼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제발 해원이 지금까지의 답답함을 뒤로한 채 속시원히 복수를 성공하고 행복해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자신들의 욕망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희주랑 우재가 어떻게 되던지는 알 게 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