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봄동

드라마에서 의상은 심미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캐릭터를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다. 디자인, 색상, 스타일 등을 통해 극중 인물의 성격이나 배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최근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성격이나 직업 같은 캐릭터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따라 입고 싶은 세련되고 멋진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펜트하우스

이미지: SBS

SBS [펜트하우스]는 시리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패션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상류층인 만큼 매회 화려한 볼거리를 과시했다. 특히 극중 최고의 악녀 천서진(김소연)은 블랙 또는 화려한 원색의 드레스, 과장되게 부풀려진 어깨, 알이 크게 박힌 금빛 귀걸이 등의 대담한 룩을 선보이며 모두의 주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특유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천서진의 대척점에 선 심수련(이지아)은 레이스가 우아하게 장식된 블라우스, 물결처럼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드레스, 따뜻한 브라운 톤의 코트 등으로 강단을 감춘 이중적인 온화함을 표현했다. 유일하게 흙수저 출신인 오윤희(유진)는 모노톤의 심플한 재킷부터 어깨-가슴 라인을 강조하는 목걸이와 원피스의 조합에 이르기까지, 외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사연 있는 싱글맘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났다

원 더 우먼

이미지: SBS

SBS [원 더 우먼]은 [펜트하우스] 시즌 3 종영 이후 올 하반기를 장악한 드라마다. 이하늬는 불 같은 성격의 비리 검사 조연주와 조용한 재벌가 며느리 강미나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물오른 연기력과 흥행 파워를 입증했다. 극중 조연주의 속 시원한 입담과 함께 서로 다른 두 인물을 차별화해 표현한 패션도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다. 조연주일 때는 조직 생활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오피스룩을, 강미나일 때는 옷맵시를 돋보이게 해주는 페미닌한 무드의 우아한 패션을 소화했다. 극중 이하늬의 숙적이자 최강 빌런인 한성혜를 연기한 진서연 또한 숏컷에 잘 어울리는 캐주얼 정장 차림, 단순한 디자인의 큼직한 귀걸이와 반지 등 개성 있는 아이템을 매치해 영악한 재벌 2세의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갯마을 차차차

이미지: tvN

김주혁, 엄정화 주연의 2004년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각색한 tvN [갯마을 차차차]는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에서 휴머니즘이 가장 또렷이 빛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윤혜진(신민아)과 홍두식(김선호)은 외모는 물론 이름까지 아기자기한 ‘식혜 커플’로 불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극중 신민아의 패션은 어깨선이 낮은 오버사이즈 니트, 크롭 티셔츠, 통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바지, 굽이 낮은 단화 등 한눈에 봐도 편안하고 활동적인 느낌이 가득해 시끌벅적하면서도 평화로운 어촌의 분위기에 잘 어우러진다. 특히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신민아가 자주 작용한 여러 벌의 핑크 톤 상의는 공진동에 점점 정을 붙이면서 두식과의 사랑을 키워 가는 혜진의 심리 변화를 잘 보여줬다.

지리산

이미지: tvN

이응복 PD와 김은희 작가의 만남, 그리고 4년 만에 TV 드라마로 돌아온 전지현 덕분에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tvN [지리산]은 패션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 않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그러나 의복은 본디 심미성은 물론, 실용성도 중요하기에 레인저로서 거친 야산을 종일 누비는 주인공 서이강에게 아웃도어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 [도둑들]에서는 통통 튀는 성격만큼 자유분방한 패션을, [암살]에서는 암살 타깃의 눈을 속이기 쉬운 웨딩드레스 차림을 각각 선보였던 전지현은 [지리산]에서 무난하면서도 탄탄해 보이는 패딩 위주의 ‘레인저 룩’을 가감 없이 소화하고 있다. 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는 드라마 첫 방송에 앞서 전지현을 모델로 한 일명 ‘지리산 컬렉션’을 출시하며 홍보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다만 PPL이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지만

너를 닮은 사람

이미지: JTBC

고현정이 3년 만의 복귀작으로 택한 JTBC [너를 닮은 사람]은 과거의 악연으로 각자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두 여인의 복수극이다. 정희주(고현정)와 구해원(신현빈) 모두 미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데(희주는 유명 화가, 해원은 미술 교사), 이 때문인지 둘은 의상에서부터 절대 회복될 수 없는 관계임을 드러낸다. 부와 명예, 가족까지 행복의 모든 요소를 거머쥔 희주는 세련된 액세서리와 밝고 선명한 의상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과시한다. 반면 평생이 가난으로 점철된 데다 꿈마저 잃은 채 살아가는 해원은 품이 넉넉하고 보풀이 많이 일어난 코트, 칼라가 목 전체를 덮는 스웨터 등을 주로 걸치며 무기력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물씬 풍긴다. 희주의 딸을 폭행한 사건 이후 해원이 희주의 집을 찾아온 장면에서는 희주의 붉은 원피스와 해원의 녹색 코트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