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퀸 송혜교와 대세 배우 장기용의 만남,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두 배우의 만남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작품마다 상대 배우와 설레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던 송혜교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매력적인 연하남으로 눈도장을 찍은 장기용과 어떤 어울림을 보여줄 건지 사뭇 기대가 됐다. [미스티]의 제인 작가, [낭만닥터 김사부 2]의 이길복 감독, [미스티]와 [부부의 세계]의 크리에이터 글Line&강은경이라는 제작진도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송혜교와 장기용이 선사하는 비주얼은 기대했던 대로 근사하지만, 도무지 몰입하기 힘든 서사와 올드한 정서, 작위적인 연출에 실망감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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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로맨스의 고전적인 테마 ‘운명 같은 사랑’을 그린다. 한 번의 만남이 몇 번의 우연을 거듭하며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익숙할 대로 익숙한 이야기다. 하영은과 윤재국은 가벼운 하룻밤 만남으로 시작했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하며 인연을 쌓아간다. 패션회사 디자인팀장 하영은은 친구이자 직장 상사인 황치숙의 맞선 자리를 대신 나갔다가 윤재국을 만나고, 때마침 터진 곤란한 상황에서 포토그래퍼인 그의 도움을 받는다. 패션업계에 종사한다는 공통분모 덕분에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된다.

사랑에 빠지는 통과의례 중 하나인 우연한 만남의 반복을 거치고 나니, 애초부터 둘은 이어질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이란 게 드러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10년 전부터 이미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던 것이다. 하영은은 힘든 파리 유학시절에 무명작가였던 윤재국의 흑백 사진에 위안을 얻었고, 윤재국 역시 자신의 사진을 구입한 하영은 덕분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깊은 인연은 비극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절정에 달한다. 하영은에게 큰 생채기를 남기고 사라진 전 연인이 얄궂은 운명처럼 윤재국의 죽은 형이란 게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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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연의 실타래가 과해지면서 발생한다. 드라마는 화려한 패션업계를 배경으로 일과 사랑에 쿨한 세련된 여성상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인물이 처한 실상은 낡고 낡은 통속 드라마에 머물러 있다. 하영은은 겉으로는 자신의 일에 매진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워너비 여성 같아 보여도, 10년 전 두 달쯤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마음을 닫고 지낸다는 게 선뜻 와닿지 않는다. 물론 만남의 기간이 사랑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윤수완이란 이름을 듣고 ‘지금 헤어지는 중’이라고 답하는 순간은 어쩐지 실망스럽다. 이미 오래전에 끝냈어야 할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나는 상처 받은 여자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영은을 둘러싼 갈등 구조도 마찬가지다. 클리셰 범벅이라 할 만큼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틀에서 진행된다. 이미 회사에서 자신을 시기하는 다른 부서의 팀장 때문에 곤혹을 치렀던 그는 윤재국을 만나면서 더 거센 난관에 부딪힌다. 윤수완의 약혼녀였던 신유정은 유치한 전화를 시작으로 사적인 감정을 업무로 끌고 와 하영은을 거세게 압박한다. 그동안 하영은을 밀어줬던 더 원의 황대표는 딸 황치숙의 맞선남인 윤재국이 하영은을 만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들이 하영은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재국의 어머니도 관망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기, 질투, 복수, 원망 등의 감정이 하영은을 시련에 빠뜨리는 계기가 되니, 공감하기도 힘들고 식상하기만 하다.

2021년 드라마라 하기엔 묘하게 촌스럽고 올드한 정서도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매회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부제와 송혜교의 내레이션은 2000년대 초반의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일상의 언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서사는 진부하게 흘러가는데, 대사 곳곳에 쿨함을 새기려 하니 오글거리며 겉돌기만 한다. 극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도 아쉽다. 특히 송혜교는 늘 봤던 대로 우아하고 시크한 매력이 넘치나 단조로운 연기 톤에 캐릭터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기용과의 비주얼 합 역시 분명 멋지나 시청자를 혹하게 하는 케미스트리가 충분하지 않다. 지지부진한 메인 서사에 치중하면서 하영은-황치숙-전미숙 세 여성의 워맨스 비중이 약한 것도 실망스럽다. 현재까지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연출, 각본, 연기의 합이 고르지 못해 로맨스 드라마의 설렘보다는 피로감만 유발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에서 이탈하는 시청자를 돌아서게 할 수 있을까. 두 주인공의 사랑은 견고해지는데, 시청자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