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주말 드라마 [설강화]는 시놉시스가 처음 공개된 때부터 방영 중인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항해 드라마 측은 방영 둘째 주에 에피소드 3회를 공개하는 강수를 두었는데, 떠난 시청자들의 마음을 붙잡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 효과가 미미해 보인다.

이미지: JTBC

가장 먼저 시청을 방해하는 요소로 다가오는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지적해왔듯 역사 왜곡이 의심되는 설정들이다. 독일 베를린 대학교의 유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의 설정은 실제로 독일 유학생과 교민을 간첩으로 몰았던 동백림사건을 연상시킨다. 임수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해 기숙사에서 적극적으로 숨겨주었던 장본인이며 안기부장의 딸로 등장하는 은영로(지수)의 원래 이름은 은영초다. 실화를 다룬 책 ‘영초언니’의 주인공이자 여성 민주 열사 천영초의 이름을 따온 것 아니냐는 비판에 드라마 측이 부인하며 이름을 수정했으나 여전히 찜찜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천영초의 남편인 정문화는 간첩으로 조작되어 고초를 겪고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더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은 계분옥(김혜윤)이다. SBS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도 다룬 적 있는 납북 미수 사건의 피해자 수지 김(김옥분)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김옥분은 1987년에 남편에게 살해당한 뒤 남편과 안기부에 의해 북한 간첩으로 조작되었고, 김옥분의 가족들은 안기부에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극중에서 계분옥은 언니가 간첩으로 몰려 고통받고 있는 가족의 일원이라는 설정으로 더더욱 수지 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에 반해 간첩을 잡으러 왔다는 안기부 직원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돈 때문에 적극적으로 간첩신고를 하려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게다가 계분옥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눈앞의 학생들을 질투하고, 심지어 학생들의 값비싼 소지품을 훔쳐서 ‘멋쟁이 대학생’ 흉내를 내는, 그야말로 ‘밉상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점이 찝찝함을 넘어서 악의적으로 느껴진다.

안기부 사람들의 묘사도 문제다. 안기부는 무고한 시민을 향한 각종 인권유린 사건들로 비판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피해자가 실존하는 조직이다. 한국의 80년대를 잘 조명해 호평을 받은 영화 [1987], [화려한 휴가], 드라마 [오월의 청춘] 등에서 조직의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설강화]에서는 이들을 기존의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방식과 정반대로 묘사한다. ‘대쪽 같은’ 안기부 팀장 이강무(장승조)는 간첩이 있는 것처럼 조작하는 안기부 행태에 질려 진짜 간첩을 쫓으며, 적법한 절차를 지켜가며 기숙사를 수사하고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내어 마치 안기부에도 의인이 존재했다는 것처럼 보여준다. 심지어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는 유순하고 온건한 성격으로 묘사하고, 안기부 직원들에게 무려 ‘우리는 회사 동료의 생명보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것을 모르냐’는 대사를 한다. 실제로 익히 알려진 안기부의 행보와는 대조되는 행동을 지속해서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드라마가 안기부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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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에서 오는 찜찜함은 접어두고서도, [설강화]는 시청자의 이목을 붙잡기엔 여전히 매력이 부족하다. 회당 러닝타임이 1시간 25분으로 꽤 긴 데 비해 늘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호수여대 기숙사를 마치 호그와트 마법학교처럼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판타지적 공간처럼 묘사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까지 집요하리만치 늘어뜨려 담아낸다. 임수호와 은영로가 학교 근처에서 잠복해 있는 안기부 요원들의 눈을 피해 기숙사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기숙사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공간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팬서비스에 가까운 장면들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담아내 긴장감이 무뎌진다. 게다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중간중간 등장하는 장면들은 오히려 시청에 방해가 될 정도로 분위기에 맞지 않게 덜컹거리면서 극의 흐름을 깨고 몰입을 방해한다. 주연 배우인 지수의 발성과 연기력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어색하고 붕 뜨는 점도 드라마의 매력을 반감시키는데 한몫한다. 

[설강화]는 벌써 드라마의 절반 가까이 흘러왔지만, 시작 전부터 외면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에 서사의 근간이 되는 기본 설정부터 잡음이 가득하니,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지속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는 드라마 측이 장담했던 만큼 오해를 풀어줄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결과만이 남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