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픽션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시대극을 말한다. 가상의 과거를 그리기에 역사 왜곡 논란에 비교적 자유로우며, 현시대의 코드와 감성도 들어있기에 시청의 폭이 넓다. 그래서일까? 최근 [연모], [홍천기]를 비롯한 젊은 감성의 퓨전 사극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유승호, 이혜리 주연의 [꽃 피면 달 생각하고] 역시 동종 장르의 장점을 어필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과연 어떤 점이 드라마에 빠져들게 했을까?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이 작품의 매력을 살펴본다.
궁궐을 벗어난 독특한 소재, 금주령

대부분 사극의 소재들은 궁궐 혹은 왕실과 관련되었다. 절대 권력과 이를 차지하려는 무리들의 갈등은 흥미진진하지만, 너무 자주 봤다는 점에서 아쉽다. 그런 면에서 [꽃 피면 달 생각하고]의 소재는 독특하고 신선하다. 드라마는 왕권 강화를 위해 금주령이 내려진 시절을 배경으로, 제도의 틈새를 파고들어 밀주를 반입하는 강로서(이혜리)와 이를 쫓는 감찰관 남영(유승호)의 관계를 그린다. 할리우드 마피아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금주령이라는 소재를 조선 시대로 가져와, 이전 사극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에 따라 독 혹은 약이 되는 술의 이중적인 의미도 눈길을 끈다. 남영은 밀주꾼인 로서에게 나라의 법도를 어찌 어길 수 있냐며 꾸짖는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으로 힘든 백성들에게 술 한잔은 작은 위로를 전한다는 로서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닫는다. 극중 금주령 제도는 서사 갈등의 원인인 동시에, 각 캐릭터들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뜻하며 두 사람의 로맨스에 힘을 보탠다.
삼각관계 속에 피어나는 츤데레 코미디와 브로맨스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도 흔한 삼각관계 플롯이 등장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흔하지 않다. 삼각관계의 인연은 남영과 로서의 ‘적과의 동침’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영은 과거 급제 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로서의 집에 거주하게 된다. 두 사람은 감찰관과 밀주꾼이라는 관계 때문에 함께하기에 어색해 하지만, 여러 위기들을 같이 헤쳐가면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투덜거리고 야박하게 구는 츤데레 감성이 의도치 않은 웃음을 건네며 달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서를 둘러싼 남영과 세자 이표(변우석)의 관계도 극의 재미를 더한다. 세자 이표는 답답한 궁궐 생활을 벗어나 풍류를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그는 밀주꾼 로서를 만나 처음에는 벗으로, 나중에는 연모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남영이 훼방을 놓으면서 삼각 로맨스의 재미가 더해진다. 특히 왕세자와 신하라는 계급 차이의 선을 지키면서도 로서를 둘러싼 두 남성 캐릭터의 치기 어린 질투심이 킥킥거림과 동시에 묘한 브로맨스를 연출한다. 위험에 처한 로서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칠 때는 이전의 장난끼 가득한 모습과 달리 멋진 카리스마를 자아내며 여심을 사로잡는다.
밀주 임파서블! 조선판 케이퍼 드라마

금주령을 배경으로 한 만큼 밀주가 배포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로서는 밀주와 관계된 여러 캐릭터들을 만나는데, 드라마는 이들을 한 팀으로 묶어내 마치 조선시대판 케이퍼 무비를 보는 듯하다.
밀주 계획의 총책임자 로서를 비롯해,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의녀 천금, 술의 재료를 담당하는 대모와 막산, 그렇게 만든 밀주를 시장에 배포하는 기린각 기생 운심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나라의 금주령과 또 다른 밀주업자 심헌에 대항하며 판을 키운다. 특히 로서를 노리는 심헌의 위협이 갈수록 거세지는데, 드라마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배치하면서 통쾌함과 함께 장르적 매력도 함께 건넨다. 조선 청춘남녀들의 연애사 못지않게 로서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밀주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둘지를 지켜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독특한 소재로 퓨전 사극 장점을 잘 구성했지만, 아쉬운 점 또한 있다. 주요 인물들의 두근거리는 만남에 꽃이 휘날리는 등 전형적이고 촌스러운 연출은 살짝 오글거린다. 주인공들의 문제가 너무 우연에 기대어 쉽게 해결되는 듯한 인상도 극의 흡입력을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유승호-이혜리의 안정적인 호흡 속에 적절한 웃음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계속 이어진다.
종영까지 이제 6화 만을 앞둔 [꽃 피며 달 생각하고]는 10화에 남영이 죽는 모습으로 충격을 안겼다. 극의 전개상 또 다른 반전이 나와 이 결말을 뒤집을 듯한데, 과연 남은 이야기에서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증과 기대감이 더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