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드라마가 찾아왔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와 고나무 작가가 쓴 동명 논픽션을 옮긴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하 ‘악의 마음’)]이다. 동기 없는 살인이 급증하던 시절, ‘프로파일링’이라는 새로운 수사 방식으로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인기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 [마인드헌터]처럼 프로파일러를 중심에 세우고, 기존 범죄 수사물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강력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미지: SBS

그동안 한국 범죄 수사물은 대개 범죄자의 잔혹한 범죄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관과의 쫓고 쫓기는 구도로 진행됐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긴장감은 있지만,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반면 [악의 마음]은 익숙한 풍경에서 한 발 벗어나 사건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마주한 수사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건에 접근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범죄를 가벼운 오락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진중한 연출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감식계의 대부, 국영수(진선규)는 누구보다 먼저 범죄심리분석이 필요하다고 깨달은 자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동기 없는 연쇄살인이 발생할 것이기에 미국처럼 프로파일링을 도입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아끼는 후배 송하영(김남길)이 그 역할을 해낼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경찰 조직의 아웃사이더, 송하영은 주변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 앞에 닥친 사건에만 매달리는 자다. 그는 기존의 수사 관행에서 벗어나 범인의 심리 같은 의문점을 따라가며 사건을 다각도로 살핀다. 그러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도 잊지 않는다. 예리한 분석력과 끈기,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진 송하영은 이미 본능적으로 프로파일러의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발 딛고 있는 사회는 현장에 남겨진 증거나 범행 수법 등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송하영과 대립각을 세운 강력반 반장 박대웅(정만식)은 자신의 경력과 눈에 보이는 증거만 믿고 범인을 단정 짓는 것도 모자라 강압적인 수사 방식으로 사건을 종결짓는다. 경찰청의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현장에 나타나는 범죄행동분석팀을 자신들의 일을 방해하거나 공을 가로채려는 눈엣가시로만 여긴다. “심리테스트라도 하나”라고 묻는 기동수사대 윤태구 팀장(김소진)의 말에서 보듯 범죄행동분석팀에 대한 이해도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지: SBS

바로 이 부분이 [악의 마음]이 기존의 범죄 수사물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이다.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활약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당시의 수사 환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장르의 매력을 확장한다. 낯설고 생경한 프로파일링이 편견을 극복하고 수사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살인마를 추적하는 과정 못지않게 흥미롭다. 여기에 남성 중심의 경찰 조직에서 자신을 향한 편견에 맞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윤태구를 또 다른 축에 세우고 서사를 더 풍부하게 끌어낸다. 세 사람이 갖은 어려움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데, [악의 마음]은 잔혹한 범죄는 누군가의 고통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더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길을 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극의 중심에 선 김남길의 화면 장악력이 뛰어나다.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 인물을 차분하고 세심하게 그려내면서 범죄자와 대면할 땐 긴장감을 조성하며 극을 부드럽게 이끈다. 진선규는 편안한 연기로 극을 유연하게 환기하며 안정감을 주고, 김소진은 단단한 카리스마로 범죄행동분석팀과 또 다른 강직한 수사관을 보여주며 극의 균형을 맞춘다.

드라마의 단점이라면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인한 3주간 결방이지 싶다. 연쇄살인범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범죄를 예고해,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할 찰나에 결방이 되다 보니 집중력이 끊긴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또한, 6화까지는 프로파일링 태동기의 어려움에 극의 무게가 쏠리다 보니 장르적인 재미가 부족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제 [악의 마음]은 2월 25일 파트 2로 돌아온다. 파트 2는 200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인 만큼 범죄행동분석팀의 활약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