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와 직원, 그리고 재벌 집안 남자와 그에 비해 평범하게 자란 여자의 사랑 이야기. 이런 류의 로맨스물은 셀 수 없이 많이 봐왔기에 솔직히 이 작품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뻔하고 유치한데, 다음 에피소드를 안 보곤 못 배기는 기분이 든다. SBS [사내맞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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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푸드에 다니는 신하리는 친구 진영서를 위해 이번에도 ‘맞선 대타’로 나섰다. 늘 하던 대로 맞선을 망치려 했는데 아뿔싸, 하필이면 상대가 자기 회사 신임 사장 강태무다. 더 얽히면 곤란할 게 분명하니, 하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추태를 부리고 돌아온다. 맞선을 망쳤다고 굳게 자신했지만, 영서로부터 ‘강태무가 결혼을 원한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듣는다. 터무니없는 제안을 한 태무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계속해서 맞선을 주선하는 할아버지의 극성(?)을 멈추기 위해서는 마린 그룹의 외동딸 진영서가 계약 결혼 상대로 적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무가 만난 진영서가 ‘진짜 진영서’가 아닌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여차저차 해서 신하리의 정체는 밝혀지고, 강태무는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하는 수 없이 하리와 가짜 연애를 이어갈 것이다. 두 사람의 ‘오피스 로맨스’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순간 역시 빠질 수 없을 테다. 6회까지 [사내맞선]은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앞서 말한 스토리대로 전개되고 있다.

어찌 보면 ‘뻔한 전개’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사내맞선]에 매료된 이유는 역시 아는 맛이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러 클리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히 대놓고 티를 내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이러한 뻔뻔함이 단점보단 장점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야기 전개가 매우 빠른 것도 큰 장점이다. 신하리의 정체가 4회 만에 완벽히 탄로 난 것도 그렇고, 인물들의 과거사를 1인극이나 프로파일링 형태로 마무리한 판단은 시청자로 하여금 온전히 이들의 케미스트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흔한 ‘고구마 전개’나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구태의연한 악역조차 없으니, 정말이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인 셈이다. 로맨스보다는 코미디에 무게를 둔 것 역시 몰입에 힘을 실어주는데, 재치가 묻어나는 대사나 과장된 상황들을 만화적으로 연출한 장면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애초에 내용 자체가 어렵지 않으니, 중간 유입의 진입장벽이 낮은 편인 점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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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김세정은 전작 [경이로운 소문]의 도하나에 이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열연을 펼치는 중이다. 예능/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액션부터, 가슴 설레는 로맨스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하게 표현했다. 안효섭은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아도취에 빠진 완벽주의자지만 알고 보면 허당끼가 있는 강태무 역을 통해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낸다. 이런 두 사람이 펼치는 티키타카는 두말할 것 없이 인상적이다. 서브 커플로 활약하고 있는 진영서(설인아)와 차성훈(김민규)의 로맨스 역시 곤히 잠들어 있던 연애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달달하다.

다만 극중 불법 촬영 범죄를 다룬 에피소드를 마무리한 방식은 조금 아쉽다. 피해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진영서가 직접 증거물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는 모습은 기존 작품들과는 분명 다른 노선이며 칭찬할 부분이다. 사건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그의 모습에선 해당 범죄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도 확실하게 드러낸 점도 그렇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드라마지만, 문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부분은 좋다. 그러나 재벌가라는 강태무의 신분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진영서와 차성훈이 이어진다는 전개는 다소 의문스럽다. 차라리 진영서와 신하리가 직접 복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다.

어느덧 중반부를 넘어선 [사내맞선]은 본격적으로 신하리와 강태무의 로맨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내용의 연속이겠지만, 사실 이 작품만의 매력과 장점들을 생각해보면 ‘뭐 어때? 재미있기만 한데’라는 기대부터 앞선다. 지금까지의 기세를 잘 이어간다면, [그 해 우리는]과 더불어 또 한 편의 웰메이드 SBS 로맨스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