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믹스 칼럼니스트 김닛코

안티히어로는 일단 ‘히어로’라는 별칭이 붙은 만큼 영웅의 범주에 포함될 만하지만, 임무 완수를 위해 나쁜 이들과도 손을 잡으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상황에 따라 딱 잘라 히어로냐 아니냐로 나누기 애매하다. 선한 목적을 갖고 싸우지만, 자신도 법과 규칙을 어기면서 나름의 ‘정의’를 구현하기에 문제가 된다. 자신의 ‘적’이 누구냐에 따라 그들을 살해하거나 치명상을 입히는 행위도 더러 있다. 모든 안티히어로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일의 범위가 모호하다. 오히려 이 같은 점이 안티히어로의 매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울버린, 헐크, 문나이트, 데드풀, 베놈, 고스트 라이더, 모비우스, 콘스탄틴, 캣우먼, 할리 퀸… 이미 상당수의 안티히어로가 영상화되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사이다 서사의 통쾌함이 반영된 것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떤 안티히어로들이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고 있는지, 이 코너에서 비교적 덜 소개했던 이들로 골라봤다.

마블-

퍼니셔

이미지: 넷플릭스

퍼니셔는 안티히어로를 잘 표현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범죄자를 무자비하게 처벌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지만, 가족의 복수와 죄책감에 기반한 행동이라는 점이 독자와 관객에게 큰 감정이입을 끌어낸다. 특수부대 출신의 정예군인답게, 아무런 초능력이 없어도 갱단부터 무시무시한 몬스터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제거해버린다. 퍼니셔의 활동에 있어서 범죄와의 전쟁은 일종의 성전이자 구도의 길이다. 

히트멍키

이미지: 마블 코믹스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된 히트멍키는 인간보다 더 날렵한 동작과 야수의 본능으로 악인을 제거하는 원숭이다. 실제 야생 원숭이를 마주쳐도 겁나는데, 총이나 칼을 든 원숭이가 눈앞에 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지능도 높기에 일류 암살자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싸우는 법을 터득한다. 인간에 의해 동족이 몰살당했는데도 인류 전체가 아닌 악인들만 해친다는 점에서 보통 재목이 아니다. 인간사회에 금세 적응한 이 원숭이는 항상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멋쟁이이기도 하다. 데드풀이나 스파이더맨과도 자주 얽히기도.

네이머

이미지: 마블 코믹스

네이머는 캡틴 아메리카, 휴먼 토치 등과 함께 나치 군대에 맞섰고, 어벤저스와 엑스맨에 들어가기도 했다. 반면 닥터 둠의 친구이자, 와칸다 침공, 멀티버스의 다른 세계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인 면모를 가진 네이머는 도대체 어느 편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인물이다. 큰 틀에서 보면, 그의 이런 행보는 아틀란티스의 지배자로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과 아틀란티스인의 사이에서 태어나 차별 받은 과거가 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화이트 퀸

이미지: 마블 코믹스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에마 프로스트는 강력한 멘탈과 다이아몬드 신체로 변하는 능력을 지닌 뮤턴트다. 처음엔 엑스맨의 적으로 등장했지만, 뮤턴트를 위하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 엑스맨에 합류했다. ‘뮤턴트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히어로로 활약하지만, 때때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윤리적 논란을 일으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진 그레이의 남편인 사이클롭스를 유혹해 불륜을 저지르거나, 비밀을 숨긴 모이라 맥태거트의 인생을 망치고, 그와 연루된 자비에 교수와 매그니토까지 큰 화를 입게 만드는 등, 적으로 돌리면 무서운 인물이다.

팔라딘

이미지: 마블 코믹스

용병 겸 탐정인 팔라딘은 기본적으로 어느 편이든 될 수 있다. 퍼니셔를 죽이려고도 했고, 데어데블을 저격해서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다. 스파이더맨이 무보수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비웃은 적도 있다. 하지만 반군을 공격하는 임무에서 이들이 모두 붙잡히자 오히려 정부시설을 폭파하는가 하면, 오딘의 창을 가져오라는 노먼 오스본의 지시를 어기고 무기를 숨겨두는 등, 문득문득 정의감을 발휘하기도 한다. 태권도, 유도 같은 무술에도 능한 강화 인간이다.

-DC-

레드 후드

이미지: HBO MAX

제이슨 토드는 배트맨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자경단 동료 중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최초의 인물이다. 이후 자신이 겪은 충격적인 죽음과 부활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고, 배트맨이 질색하는 총기 사용과 살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레드 후드가 되었다. 본인은 고담시를 청소하겠다며 방해하는 이들은 배트맨이라도 해치우겠다고 말한다. 사실상 범죄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많은 일들을 겪은 뒤 배트맨 패밀리 내의 안티히어로 역할을 맡는다. 드라마 [DC 타이탄] 시리즈에서도 등장해 남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만, 죽음에서 부활해 레드 후드가 된 배경이나 이후 행동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게 묘사되어 아쉽다.

스웜프 씽

이미지: HBO MAX

생물복원혈청을 개발한 알렉 홀랜드 박사는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늪으로 뛰어든다. 박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생물복원혈청이 늪과 섞이면서 초록색의 스웜프 씽이라는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한다. 박사의 기억을 간직한 이 신비한 생명체는 처음엔 자신이 홀랜드 박사라고 생각, 죽은 아내의 복수로 악당을 해쳤다. 자연의 힘과 연결되어 식물을 조종할 수 있어서 고담시를 식물로 뒤덮는 등의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늪지대를 배회하는 괴생명체’로서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대체로 인간)들을 없애는 일에 주력한다.

비질란테

이미지: HBO MAX

마블의 퍼니셔를 DC 스타일로 창조한 캐릭터로, 비질란테는 갱단에게 가족을 잃고 자경단이 된다. 그의 정체는 에이드리언 체이스라는 판사로,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직접 제거하면서 점점 과격해간다. 누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던 그는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자 복수를 위해서라도 활동을 그만둘 수 없었고, TV에서 자신의 정체가 밝혀진 뒤 판사를 그만두고 비질란테로만 살아야 했다. 자신의 활동 때문에 죄 없는 경찰이 죽게 되자 자살했고, 동생이 새로운 비질란테가 되었다. 드라마 [피스메이커]에서는 원작과 상반된 이미지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셰이드

이미지: DC 코믹스

빅토리아 시대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림자 능력과 불사의 운명을 얻은 한 남자는 세계를 떠돌며 셰이드라는 이름의 모험가 겸 암살자로 살아간다. 미국에 가서 히어로 플래시와 스타맨의 적이 된 그는 때때로 범죄자와 싸우고 사람을 돕기도 했다. 1대 스타맨이 은퇴하고 그의 아들이 새로운 스타맨이 된 후, 셰이드는 스타맨의 멘토가 되어 히어로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악마 에트리간

이미지: DC 코믹스

아서왕의 기사인 제이슨 블러드는 마법사 멀린에게 소환된 악마 에트리간과 결합한다. 이 때문에 불로불사가 된 제이슨은 에트리간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갔고, 현대에 이르러 악마학자가 되었다. 주문을 외워 에트리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제이슨은 때에 따라 히어로와 협력하거나, 에트리간의 변덕 때문에 그들과 싸우기를 반복했다. 에트리간은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가 되는가 하면, 엉뚱하게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뻔한 적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