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부터]는 베네수엘라의 연속극이 원작인 미국의 유명 시리즈 [제인 더 버진]의 리메이크작이다. 혼전순결을 지키는 주인공이 의료사고로 임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로, 원작 특유의 자극적인 소재 덕에 국내 리메이크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공개됐을 때부터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임수향과 성훈이 [신기생뎐], [아이가 다섯] 이후 세 번째로 같은 작품에서 만나게 돼 방영 전부터 기대감을 자아냈다.

이미지: SBS

첫 화에서 4.1%를 기록한 [우리는 오늘부터]는 꾸준히 3~4%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보는 사람만 보는 드라마’ 이미지로 굳어졌으나, 애청자들에게는 ‘뇌빼드’, 일명 뇌 빼고 보는 드라마로 불린다. 암시와 복선이 없어 머리 아프게 되새김질할 필요 없이 가볍게 보기 좋고, 적당히 자극적인 장면 연출과 서사를 제공해 즐겁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유쾌한 별명까지 갖게 된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극의 설정이다. 주인공 오우리(임수향)는 평생 혼전순결주의자로 살아왔으나, 검진을 받으러 간 산부인과 병원의 의사가 실수로 오우리에게 인공수정 시술을 하면서 임신을 하게 된다. 정자의 주인공은 코스메틱 기업의 대표이자, 오우리의 첫 키스 상대인 라파엘(성훈)이다. 게다가 오우리가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의 주연배우 최성일(김수로)이 죽은 줄만 알았던 오우리의 생부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라파엘의 아내 이마리(홍지윤)와 그의 엄마 변미자(남미정)가 돈을 노리고 신분을 세탁한 사기꾼이고, 라파엘의 아버지 김덕배(주진모)가 오우리에게 아이를 낳으라며 거금을 들이밀거나, 라파엘 부자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온갖 막장에 가까운 설정이 등장한다. [우리는 오늘부터]는 여느 막장 드라마처럼 이러한 설정을 사뭇 진지한 톤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클리셰임을 더욱 부각하고 강조하면서 마치 유쾌한 막장 패러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 또한 인상적이다. 1화부터 임신 사건과 오우리의 남자친구 이강재(신동욱)의 프로포즈가 거의 동시에 벌어진다. 2화에서는 오우리가 뱃속 태아에게 어린 미혼모였던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투영하면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병원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끝을 맺는다. 4화에서는 라파엘이 이마리와 이혼을 원한다는 것과 최성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오우리에게 한 번에 쏟아진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들이 한꺼번에 연달아 몰아치면서 시청자에게 자극적인 즐거움을 안긴다. 으레 이런 사건 하나가 벌어지면 흘러가는 과정을 길게 끌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고구마를 먹는 듯한 답답함을 줄 만도 한데, 드라마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바로 갈등을 해소하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산뜻하게 분위기를 환기하는 동시에 빠른 속도감이 주는 시원한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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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간의 관계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인공 오우리와 남자친구 이강재,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라파엘의 삼각 구도가 로맨스의 중심이다. 오우리와 이강재의 관계는 오우리의 혼전순결주의에 대해 오히려 이강재가 더 강박적인 반응을 보여주면서, 일명 ‘봄잠바’ 남자친구 모습을 통해 웃음을 안긴다. 라파엘은 이강재를 사랑하는 오우리에게는 조금 신경 쓰이는 사람으로, 이강재에게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불청객처럼 보인다. 서브 커플은 흥미롭게도 오우리의 부모인 오은란(홍은희)과 최성일이며, 로맨틱한 구도는 오히려 이쪽에서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거의 30년 만에 재회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오은란을 향해 최성일은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순애보를 드러낸다.

현재 [우리는 오늘부터]는 절반 가까이 흘러왔으나, 지금까지는 오우리와 라파엘 사이의 로맨스가 많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원작에서도 주인공 제인이 라파엘과 이어진 만큼 오우리 역시 라파엘과 이어지는 방향으로 예상해볼 수 있는데, 오우리는 6회에서 이강재에게 이별을 고했고, 라파엘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마리와 이혼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과연 오우리는 원작과 같이 아이를 낳고 라파엘과의 로맨스에 다다르게 될까, 아니면 [우리는 오늘부터]만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앞으로의 전개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