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롯데 엔터테인먼트

흔히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한다. 특히 속편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온 경우 기대보다 우려가 뒤따른다. 우선 팬들이 실망 대신 추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크고, 둘째는 흘러간 시간 동안 대중의 취향이 변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블레이드 러너]는 사이버펑크 장르를 정립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숱한 기대 속에 개봉한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자아내며 흥행에 실패했다.

원초적인 유머와 몸 개그로 코미디 영화의 전설이 된 [덤 앤 더머]도 마찬가지다. 속편 [덤 앤 더머 투]는 비슷한 유머 코드를 들고 20년 만에 컴백했다. 다행히 영화는 제작비의 세 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지만 ‘저속하다’, ‘오버스럽다’, ‘오글거린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족하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탑건: 매버릭]은 보란듯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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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은 최고의 파일럿 ‘매버릭’(톰 크루즈)이 조종사 훈련 학교 ‘탑건’에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의 사명은 생사를 넘나드는 임무에 투입될 조종사를 3주 안에 훈련시키는 것. 그가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부어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성공시켜야 한다.

[탑건: 매버릭]은 곳곳에 1편에 대한 오마주가 보인다. 신나는 로큰롤 음악이 오프닝 시퀀스를 열고, 주인공은 트레이드 마크인 에비에이터 선글라스와 항공 점퍼를 입고 오토바이에 오른다. 또한 1편에 출연했던 빌 칼머와 장 루이자 켈리가 돌아왔다. 배경은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해군 훈련지이며 가상의 적국에 맞선다는 설정 역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작을 고스란히 베껴서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탑건: 매버릭]은 전작을 계승하되 더 다채롭고 더 진화된 모습을 선보인다. 가장 인상 깊은 변화는 캐릭터의 다양성이다. 유일한 여자 훈련생인 ‘피닉스’는 의리 있고 당당한 성격이 돋보인다. 그의 파트너 ‘밥’도 동기들과 대비되는 차분한 성정으로 피닉스와 안정된 케미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루스터’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그는 1편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매버릭의 윙맨 ‘구스’의 아들이다. 루스터는 매버릭에게 반항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루스터와 매버릭의 갈등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고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러닝타임의 한계가 존재하는 영화 특성상 모든 캐릭터가 깊이 있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각자에게 개성을 부여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는 1편에서 조연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빛나게 하거나 주인공에게 시련을 부여하는 역할에 그친 것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다. 개인적으로 글렌 포웰이 연기한 ‘행맨’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 말미에 나타난 그의 변화는 조연인 그가 처음 시작한 위치에 머물지 않고 알을 깨어 성장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영화가 강조하는 협력과 용기의 가치를 증명해 감동을 낳은 것은 덤이다. 이처럼 [탑건: 매버릭]의 조연 캐릭터들은 각자 다른 성격과 매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으로 전편보다 한층 더 입체적인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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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 나고 세련된 비주얼 역시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톰 크루즈와 제리 브룩하이머 프로듀서는 실전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CG 없이 촬영하기를 원했다. 이로 인해 배우들은 거의 8G에 가까운 제트기 내부 중력을 버티는 훈련을 거쳐야만 했다. 작중 배우들의 표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리얼하고 생생하다. 여기에 제작진은 특수 개발한 카메라를 전투기 조종석 내부에 부착해 관객이 조종사 뒤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한편 로맨스는 1편과 유의미하게 달라졌다. 1편에서 대사로만 언급된 ‘페니’가 매버릭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1편의 여주인공 ‘찰리’와 달리 페니는 매버릭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하다. 빠져도 전개가 무난히 흘러갔을 듯한 로맨스는 다행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1편에서 두드러졌던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도 사라졌다. 훈련생들은 여전히 바에서 술을 마시고 바다에서 운동을 즐기지만 1편보다는 단정하고 유해졌다. 전작의 거칠고 남성적인 분위기를 찾는다면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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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톰 크루즈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영화는 불완전한 인간 대신 AI를 믿는 시대적 흐름에 반기를 든다. 연륜은 기술의 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멋지게 반박한다. 그렇기에 톰 크루즈의 귀환이 더욱 값지다. 무엇보다도 변함없는 톰 크루즈의 카리스마와 부드러운 눈빛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한 매버릭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 입체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생생한 영상미가 어우러진 [탑건: 매버릭]은 단순히 1편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놀라운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130분. 12세 관람가. 6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