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상위 5편의 공통점은?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 (주)대명문화공장, 인디스토리, 영화사 풀 , CGV아트하우스, (주)엣나인필름, (주)마운틴픽쳐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순위 상위 열 편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세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2014)는 부모님과 같이 보기에는 너무 빡센(?) 작품이다. 부모님 두 분 오붓하게 보실 작품으로 선뜻 추천하기에도 너무 슬프고, 다만 불효자가 한때나마 스스로 각성하기에는 효과적인 영화다. 오붓하게 늙어가던 노부부의 마지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콧물까지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면 누구와도 같이 보기 힘든 영화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어지간한 상업 극영화도 넘기기 힘든 스코어 500만 관객까지 넘길 뻔했다.

강을 건너버린 임만큼이나 ‘반려우(牛)’와 함께 늙어가는 할아버지 스토리가 절절하게 극장가를 적셨던 적도 있다. [워낭소리](이충렬, 2008)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처음으로 관객 100만 명 시대를 열어 흥행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으로 남았다. 이 영화도 300만 명 가까운 누적 관객수를 기록했다. 또 있다. 100만 관객을 넘긴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중 가장 근작인 [노무현입니다](이창재, 2017). [노무현입니다]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고도로 형성됐던 2017년 5월 개봉했다.

이쯤 되면 눈치가 아무리 느려도 전술한 세 작품의 소재적 공통점이 단 두 글자로 요약해 ‘죽음’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100만 관객을 넘기진 못했지만 [그날, 바다](김지영, 2018)와 [울지마, 톤즈](구수환, 2010)도 접근 방식이 다를 뿐 포괄적으로는 죽음을 다루고 있으니, 필자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순위 상위 5편이 한 편도 빠짐없이 아주 희한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날아든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주목 받고 있는 영화 [송해 1927](윤재호, 2020)은 흥행 스코어만 빼면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들과 닮은 점이 많고,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경향과 유행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때 영화관은 작품을 관람하는 행위 자체로써 고인을 추모하는 ‘헌화 없는 분향소’가 된다.

영화 [송해]는?

이미지: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수년 전 영화 공부를 시작했던 대학원생 수준에서도 당시에 송해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며 추억 하나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전국 방방곡곡 고르게 다니며 발자국을 찍고 국민을 만났던 분으로 기억한다.

다큐멘터리 [송해 1927]은 KBS1 [전국노래자랑] MC를 통해 온 국민과 함께 한,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 일요일의 남자 등 수식어와 함께 시대의 아이콘이 된 송해 선생님의 인생사를 그린다. 작품은 1927년생 송해 선생님의 화려한 무대 뒤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6. 25 전쟁으로 부산에 도착한 사연부터, 유랑극단을 통해 가수가 된 과정,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희극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대한민국의 일요일을 책임진 일들을 찬찬히 풀어낸다.

[송해 1927]에서 절대 분량을 차지하는 사람

이미지: tvN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종반으로 극을 전개하면서 옥동(김혜자)과 춘희(고두심), 동석(이병헌)을 전면에 내세운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삶 속에서 생기는 굴곡진 모성애를 보여주기 위해 설정된 인물들이다. 춘희는 전부 먼저 보내고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식마저 생사 기로에 있음을 알고,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도 며느리에게만큼은 짐을 지우지 않으려 한다. 보내 봤기에 아는 그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피눈물 나는 의지다. 춘희의 절친인 옥동은 상황이 그 반대다. 본인이 죽음과 마주한 상황이다. 아들 동석과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목포행 뱃길 여행을 떠나고, 모자가 나누는 살가운 대화 속에서 시청자들은 옥동에게도 먼저 보낸 딸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통속극에서 복잡한 가족사는 필수 설정이지만 하필 죽은 자식 이야기라니. 속절없다. 그것도 최종회. 여기선 우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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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1927]는 송해 선생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물 다큐멘터리였다가 어느 순간 ‘그 강을 먼저 건넌 님 이야기’를 축으로 급격하게 전개 방향을 튼다. 다름 아닌 아드님과 부인 이야기이다. 알려진 대로 송해 선생님의 아들(故 송창진)께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부친인 송해 선생님보다 먼저 생을 마감했다. 90분 남짓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아들 이야기가 차지하는 몫이 절반 이상이다. 영화 종반부에는 송해 선생님께 아들의 생전 육성 녹음도 들려드리고, 송해 선생님 손자께서 부르는 노래까지 고인이 된 아들께서 생전에 녹음한 곡이다.

영화는 손자와 아들 두 사람을 겹쳐 포개어 놓기도 한다. 아들께서 곧잘 쳤다는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손자께서 영화에 출연하는 장면부터다. 부인인 故 석옥이 여사 이야기도 따님이 직접 한다. 이쯤 되면 송해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슴에 묻고 다시 꺼내기 힘든 가족사인데, 감독이 좀 가혹하다 싶을 만큼 집요하게 들추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컨대 윤재호 감독은 처음부터 ‘송해’라는 개인의 역사 대신 가족사를 선택해 영화를 기획했다. 국내 영화 팬들이 가족 코드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일정 부분 흥행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송해 1927]을 이야기하기 위해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상위 5편의 공통점을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송해 1927]은 고인이 된 가족들 이야기에 연출력을 집중하고 있다. 물론 2년에 달하는 촬영 기간을 송해 선생님 가족사에 전적으로 소모한 느낌도 적지 않아 인물 다큐멘터리로서 가지는 한계도 선명하다. 그래서 감히 송해 선생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감독으로서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코로나19의 대유행 끝자락에 개봉한 영향으로 흥행 성적은 아쉽지만, 용기 있게 극장과 OTT 플랫폼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 송해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소중하게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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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이른바 ‘소재 중심주의’는 한 끗 차이로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호평의 근거가 된다. 어떤 다큐멘터리 영화는 단지 촬영 대상을 잘 정해 일정한 작업을 거치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록적 가치를 가진다. 그러면 촬영 대상은 작품 속에서 그 스스로임과 동시에 역사를 투시해 보여주는 매개가 된다. 하물며 고인에게 붙었던 ‘움직이는 대중문화사’ 또는 ‘살아있는 한국 방송사’ 등 대단한 수식어들을 생각해본다면. [송해 1927]은 고인을 기리는 헌사이면서 비망록 수준의 사회적 가치로 확장해 나아가는 작품이다. 특히 돌아오는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을 방영하던 그 시간에는 영화의 여운이 더욱 짙게 깔릴 듯하다.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전국민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준 송해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