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혜연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됐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하늘은 우중충하다. 날씨에 어울리는 끈적한 로맨스도, 촉촉한 새드 무비도 좋지만 지금은 무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스릴이 필요하다. 쏟아지는 비처럼 질펀한 컬트, 강렬하고 순도 높은 공포, 우중충함을 극대화시키는 아포칼립스까지. 장마철에 어울리는 서늘하고 매력적인 스릴러 영화를 감상해 보자.

‘저수지의 개들’ 컬트의 제왕, 쿠엔틴 타란티노 월드의 시작

이미지: Miramax Films

대규모 보석 탈취를 위해 모인 6명의 프로 갱들이 숨어 있는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마피아 게임을 시작한다. 홍콩 누아르를 오마주한 타란티노의 거칠고도 흥겨운 연출이 돋보이며, 시시콜콜한 수다 속에서 펼쳐지는 갱들의 대립이 흥미진진하다. 멀끔한 신사들의 브런치 타임을 가장한 오합지졸의 모임에서, 이들은 농담과 진담을 주고받으며 묘한 심리전을 펼친다. 인류애 품은 리더, 의리파 사이코패스, 진정한 프로페셔널, 위험한 잠입 경찰의 존재까지. 폐허의 창고를 축축한 저수지로 만들어 버리는 개들의 유머는 천박해서 즐겁고, 저돌적으로 배치되는 반전으로 씁쓸함까지 더해준다. 가히, 가장 매력적인 마피아 게임을 관전하게 될 것이다. 현재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서비스 중

‘장화, 홍련’ 음산하고 매혹적인 가족 괴담

이미지: 청어람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두 자매가 친아버지, 새엄마와 함께 살며 괴이한 일들을 겪게 된다. 김지운 감독은 불륜, 학대, 트라우마, 정신분열, 환영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을 섬세하게 연출했다. ‘놀라게 하기’가 주를 이루던 기존 공포 영화의 상식을 깨는 대신, 공포의 증폭을 유려한 미장센의 힘으로 해결한다. 구원받지 못한 채 스스로를 새장에 가둔 자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완벽히 짜인 구도 속에서도 깊은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익숙한 공포 대신 오는 낯선 서늘함에 매몰된다. 누구 하나 행복할 수 없는 인물들과 우아한 일본식 가옥 배경이 대비되며, 기묘하고 아름다운 걸작이 탄생했다. 현재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U+모바일tv에서 서비스 중.

‘사냥의 시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시간

이미지: 넷플릭스

희망 없는 도시, 위험한 범죄를 계획하는 4명의 청년들과 그들을 추격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불완전한 소년성을 섬세하게 표현했던 수작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다시 한번 이제훈, 박정민과 시너지를 이뤘다. 암울한 분위기, 몰락한 경제, 총기 무법지대 등의 삭막한 설정으로 감독만의 강렬한 디스토피아를 구축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절대악에 비례할 만큼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부각되는 하이스트 영화라기에, 이곳 청춘들은 한없이 무력하다. 마음에는 먼 나라 바다를 품은 채, 탈출구 없는 지옥을 떠도는 청춘의 평범성을 표현하고자 했으리라. 영화는 2편을 예고하듯, 사냥감들의 분투를 쉽게 끝내주지 않으며 마무리된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