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디어 에반 핸슨’, 원작 뮤지컬 보다 못하다?

뮤지컬의 소재가 다채로워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디어 에반 핸슨] 같은 경우를 보면 확실히 실감이 난다. 2010년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 국내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을 물어보면 언제나 수위에 꼽히는 작품이다. 최근 영화화가 되어 극장 개봉 뒤 OTT 서비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은 이 작품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이 영화 자체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대개 영화화된 뮤지컬 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서 실제 무대로 구현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 아직 우리나라에서 상연된 적이 없기에 다소 낯설기 때문일까. 오롯이 영화만으로 이 작품을 받아들이기엔 이 작품 본연이 가진 매력을 담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가 영화에서 너무 부각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캐스팅의 문제일까.

물론 ‘별로’인 작품의 이유가 단 하나인 경우는 없다지만, 이 작품의 악평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속상한 지점이 있다. 미국에선 이 작품의 혹평 때문에 원작에 대한 비판까지 번져갔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전개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영화는 영화이고 뮤지컬은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의 경우 뮤지컬 무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영화적 각색이 있었을 뿐 아니라 스토리 흐름 자체에도 차이가 있기에 더 그렇다.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사실 뮤지컬은 서사도 중요하지만 음악과 연출 무대 운용 등이 같이 중요한 장르다 보니, [디어 에반 한슨]의 경우 이 부분도 매우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작품의 내용이나 전개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이 나오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은 바로 ‘넘버’, 즉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영화로 처음 접하는, 넘버를 들어보지 못한 분들의 경우 이에 주목하여 듣는다면 이 작품에 대한 호감을 보다 더 높일 수 있을 듯.

이 작품의 중심 내용은 결국 제목에서 보여주듯 ‘사랑하는 친구 에반 핸슨에게’가 핵심이 아닐까 싶다. 그 메시지만을 꽉 잡고 이 작품을 본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영화가 가리키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으리라. 아마도 그것이 이 작품을 인기 있는 뮤지컬의 자리에 올렸고, 또 꾸준히 유지시키고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잘못 쓴 편지 한 통이 일으킨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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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은 ‘에반 핸슨’이라는 고등학교 남학생이 주인공이다. 다만 대개의 뮤지컬 주인공이 멋지고 잘 생기고 똑똑하고 유능하고 인기 있는 만능인이란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의 에반은 그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정확히 병명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자폐와 강박, 피해의식, 애정결핍, 우울증 등이 섞인 상태로 보인다. (대체로 작품 소개에는 ‘사회 불안 장애’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건 그 수준이 중증 장애가 아닌 어느 누구나 특정 상황에 처할 경우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정신 병증이라는 것이겠다.

에반 핸슨은 간호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한부모 가정의 고등학생이다.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는데, 그 상담사 분의 권유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있다. 바로 ‘Dear Evan Hansen’으로 시작하는 그 문제의 편지 되시겠다. 근데 그 편지를 코너에게 뺐기게 되고 코너가 그것을 몸에 지닌 채로 자살을 하게 된다. 이 편지가 ‘에반에게’로 시작되다 보니, 코너가 친구였던 에반에게 남긴 유서로 오해받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에반이 사실은 오해라고 인정했다면 사태는 간단히 마무리되었겠지만, 그랬다면 아마도 이게 작품이 되지 않았겠지. (웃음)

코너는 사실 에반이 짝사랑해온 조이의 오빠였고, 코너의 부모님이 항상 애정에 굶주렸던 에반에게 관심과 사랑을 퍼부어주는 상황이 되면서 그냥 이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게 되고, 거짓말은 점점 크기를 더해가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물론 여느 작품이 다 그렇듯이, 이 작품도 결국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든 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면서 해결된다. 다만, 뮤지컬은 고등학생 수준에서 일이 해결된다면, 영화의 경우는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정도?

유독 영화에 ‘나’가 많이 등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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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그건 아마도 학교에서 인기인으로 사는 친구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본디 고독하게 태어났고 또 고독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사이의 과정은 누군가와 계속 교류하면서 나와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일 테다.

아마도 에반의 상담사가 그에게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교육받는 일기쓰기가 될 수 있겠다. 나를 돌아보고 나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그렇게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연습이 바로 일기쓰기, 나에게 편지 쓰기가 주는 선물일 테다. 하지만 그 과정은 무척이나 부끄럽고 쑥스럽고 또 자기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겠지. 아마도 그래서 에반은 코너에게 편지를 들키고 그걸 숨기기 위해 이리도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 보는 내내 에반의 고구마 여러 개는 먹은 것 같은 행동 때문에 복장이 터질 거 같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사랑스럽고 짠해지는 이유는 바로 어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바로 저 지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넘버에선 외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나’와 그럼에도 혼자 남겨진 ‘나’ 그리고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어하는 ‘나’가 꾸준히 등장한다. 그런 현대인의 마음을 무엇보다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잘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여전히 [디어 에반 핸슨]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사랑받지 못했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PS. 여담으로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둬서 우리나라에 라이센스 버전의 뮤지컬이 개막되길 바랐는데, 조금은 아쉽다. 아직 별다른 공연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올해는 안 될 거 같은. 당분간 ost를 들으면서 기다려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