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이미지: EBS

다큐멘터리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 8월 22일 개막

오는 22일 개막하는 제1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가 초청작 리스트를 공개했다.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킴을 찾아서 My Name Is Kim](정수은, 2022)나 [금정굴 이야기 Korean Genocide](전승일, 2021)은 굴곡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소재를 건져 올려 수면 위로 꺼내 놓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가 기록이라면 감독은 사관(史官)이다. 발굴하지 못한 역사를 끄집어 내 공론화하는 사관들이 부지런히 나오고 있어 반갑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사적인 기록인 영화 [할머니의 먼 집](이소현, 2016)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팬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반가운 작품들도 ‘다시 보는 다큐시네마’ 섹션에 초청받았다. [그레타 툰베리 I Am Greta](나탄 그로스만, 2020)와 [이창동 : 아이러니의 예술 Lee Chang-dong: The Art of Irony](알랭 마자르, 2022)처럼 다른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작들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EIDF와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만큼 반가운 축제가 없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이 자리에 참석해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만나길 바란다.

EIDF는 다큐멘터리 영화 전용 플랫폼 D-BOX를 통해 상영작 중 두 편을 먼저 공개했다. 마그레트 올린과 카챠 회그셋이 공동 연출한 [자화상 Self Portrait](2020) 그리고 메리 훼턴 감독이 연출한 [지미 카터 : 로큰롤 대통령 Jimmy Carter – Rock n Roll President](이하 [지미 카터], 2020) 이다. 보통 영화제에서 개막보다 빨리 온라인을 통해 대중에 먼저 작품을 공개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어쩌면 코로나19 대유행과 정면으로 충돌했던 영화 산업에 남은, 일종의 균열 또는 변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페스티벌 초이스 섹션의 경쟁작 공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니, ‘클로즈업 아이콘’ 섹션 상영작 중에서 선공개할 작품을 고른 것 같다.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 거장들의 일대기를 조명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클로즈업 아이콘’ 섹션은 다큐멘터리가 낯선 대중들에게 선보이기에도 부담이 덜하다.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도 많다.

대통령과 로큰롤은 무슨 관계? 다큐멘터리 ‘지미 카터: 로큰롤 대통령’

이미지: Greenwich Entertainment

이에 ‘다큐템플러’ 코너에서는 오늘부터 3주간 EIDF 초청작 중에서도 D-BOX를 통해 볼 수 있는 재미 넘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 칼럼은 [지미 카터]에 관한 것이다. 지미 카터는 야권 지도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군부 정권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자, 당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마련하고 검토한 사실로 우리나라 정치사에 익숙한 전직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모습은 다큐멘터리에 어떻게 담겨 있을까?

인물, 정치 그리고 음악 – 지미 카터에 도달하는 다양한 길

이미지: Greenwich Entertainment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될수록 보다 입체적이고 정확할 수 있다. 지미 카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주의 외교’라고도 부르는 소위 인권 외교, 또는 사형 제도에 반대했던 그의 아내 로잘린 카터, 그가 집필한 소설 ‘호넷의 둥지 The Hornet’s Nest: A Novel of The Revolutionary War’과 퇴임 후 받은 노벨평화상 등 지미 카터라는 인물에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꽤 혹할 부분이 있는데, 지미 카터라는 정치인의 느닷없는 그래미 어워드 수상 경력에 특히 호기심을 가질 만하다. 카터는 음악에 대단히 조예가 깊은 대통령이었다. 음악이라는 돋보기로 지미 카터를 살펴보면 그와 가까웠던 밥 딜런 등 당대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그에 대해 회고하는 인터뷰 영상을 확보할 수 있고, 음악을 활용해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메리 훼턴 감독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지미 카터] 제목 그대로인 인물 일대기를 다루는 인물 다큐멘터리면서, 그가 관통한 굴곡진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정치 다큐멘터리임과 동시에 무엇보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다. 락앤롤부터 재즈, 컨츄리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러닝타임 내도록 [지미 카터]에 가득 흐른다. 아마 영화를 보는 동안 지미 카터의 삶을 바라보면서도 귀를 감아채는 음악에 푹 빠질지도 모르겠다.

국가 지도자를 다루는 서로 다른 방식

이미지: Greenwich Entertainment

한편으로 이 영화가 국가 지도자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로 보자면 참 고상해서 부럽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지도자급 정치인을 다룬 인물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엔 [무현 : 두 도시 이야기](전인환, 2017)부터 [물의 기억](진재운, 2019)에 이르기까지 극영화는 빼고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만 5편이나 된다. 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두 편, 대통령은 아니지만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한 편 있다.

그런데 전술한 작품들은 [지미 카터]와 달리, 이미 인물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를 일정 부분 애도할 목적으로 제작됐다. 당사자 인터뷰란 걸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태 다큐멘터리 [물의 기억]만 빼면 하나같이 접근법이 비슷하다. 정치적인 시각 중심으로 인물을 살핀다. 제작 의도와 달리, 관객들 입장에서는 표지만 다른 책을 또 산 것 같은 피로감도 든다. 입체적으로 인물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없다. 대통령 생전에 제작된 작품들도 하나같기는 마찬가지다.

[공범자들](최승호, 2017) [저수지 게임](최진성, 2017) [전투왕](이상호, 2021) [다이빙 벨](이상호, 2014) 등으로 부르는 소위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다. 생전엔 모조리 탐사보도, 애도는 사후에. 흔히 구분하는 정치 이념으로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국내 다큐멘터리 양식 경계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나라 대통령 말년이 정파를 떠나 하나같이 이렇게 비참했다. ‘웃픈’ 현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결국은 현실에 뿌리를 두다 보니, 현실 정치가 녹록지 않고 팍팍할수록 정치인 다큐멘터리 영화도 별수 없이 정치를 닮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