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동기

이미지: 워터홀컴퍼니(주)

학창 시절, 좋아하는 여학생을 그렇게나 못살게 굴고 괴롭히던 녀석이 있었다. 괜스레 장난을 치거나 놀리는 건 예사였고, 언제나 그렇듯 그 여학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이곤 했다. 본심은 그게 아닐진대 왜 그리 한 번도 속마음을 꺼내 보이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진심을 표현하고 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을 접할 때면 주인공 김 첨지의 속내가 늘 궁금했었다. 암울한 식민지 조선 시대의 삶이 자연스레 문장에 밴 것도 있을 테고,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어찌 표현할 도리를 찾지 못한 그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들여다보고 싶어 했던 이유도 있겠다. 글로 읽어내던 그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겉으로 표현하고 싶어도 차마 끄집어내지 못한 그 순간의 울분도 함께 들어있지 않았을까.

어느 영화에서든 반어적 표현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말하자면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기에 부족한 서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이를 통해 메시지를 새롭게 수식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것 같다. 이는 대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과 행동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영역인데, 우리는 화면 속에서 이를 하나의 ‘틀’로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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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는 그 ‘틀’을 찾기에 아주 좋은 사례가 되는 작품이다. 멜빈(잭 니콜슨 분)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많은 표현이 그의 속내와 다른 문장들로 가득 채워진 것만 봐도 그렇다. 마치 영화의 제목을 통해 겉과 속이 다른 이유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어쩌면 그 속에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즉 ‘사랑’이 의미하는 근본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여러 목적 또한 들어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상의 가운데에서도 이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고 마음속에 빗장을 걸어 잠그기 일쑤다. 결국 영화가 꺼내는 얘기는 멜빈이 첫 장면에서 글을 쓰며 되뇌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는 과정과도 같다. ‘사랑’은 수차례 경험하고서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 묘한 기운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는 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놓는 내내, 멜빈이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그토록 싫어하던 강아지 버델과 며칠을 함께 하거나,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웃 사이먼(그렉 키니어 분)을 데리고 함께 볼티모어로 향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는 평소 강박신경증에 헤매고 있었을 뿐, 그가 표현하는 방식 그 자체로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엔 다소 부족하기만 하다. 영화의 주제에 밑줄이 그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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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헬렌 헌트 분)은 아이의 병 치료를 도와준 멜빈에게 감사 편지를 쓰며 그의 엄마와 잠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기분이 아주 묘하고 바보 같던 긴장감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그는 평소 주변의 모든 이들을 시기하고 있었음을 털어놓는다. 결국 영화는 말한다. 정상으로만 보였던 캐롤과 사이먼이 비정상적인 피로감을 호소하고, 비정상으로만 보였던 멜빈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생동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 순응하고 있었고, 입은 거칠었지만 속은 결코 차갑게만 식어있지 않았다. 결국 멜빈이 보여준 행동은 겉과 속을 달리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병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멜빈이 아닌 다른 이들이었던 거다.

이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희석하고 겉과 속의 표현과 본심을 흩트려 놓는 건 감독의 의도적인,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연출 방식이 된다. 인간이 가진 표면적인 것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가 될 수 없고, 또 그들의 내면이 겉으로 모두 표출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니까 말이다. 영화가 말하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표제는 사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눈에 보이는 개념적인 사실로서 인식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이 이를 감싸 안을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강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멜빈의 표정과 말이 따로 놀고 말과 행동이 구분되는 흔적은 화면 속에서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분리된 모든 요소는 그 안에서 각각 나누어진 기제를 가지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건 대사로서 표현되는 하나의 말이 될 수도, 때로는 손짓과 발짓으로 구분되는 행동의 기표가 되기도 한다. 이는 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의 선을 따라 우왕좌왕 사선을 그어 다니는 독특한 그의 표현법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눈빛 또한 마찬가지로 언제나 술에 취한 듯 힘이 없는데, 그 눈동자 움직임마저도 제대로 된 방향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멜빈은 캐롤이 손수 써온 감사 편지를 끝내 받지 않는다. 그에게 빚지기 싫었던 그는 이를 수락하는 것만으로 그를 자신의 테두리 안에 놔둘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그의 부족한 면을 자신이 감싸 안아야 그와 함께 할 명분이 생긴다는 거다. 그 생각이 그를 볼티모어로 향하는 동행에 함께 하게 만들고, 그 여정에서 그와 함께 한 데이트와 식당이 요구한 넥타이, 그리고 정장까지도 그에게 강한 도전으로 다가가게 한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그 일이, 그에게는 정상적인 일상의 테두리 안에 들어서야 한다는 크고 두려운 한 걸음이었던 거다.

이미지: 워터홀컴퍼니(주)

캐롤이 늦은 시각 자신을 찾아온 멜빈을 앞에 두고, 왜 자신은 보통의 남자친구를 가질 수 없냐며 절규할 때, 그의 엄마가 나타나 그런 친구는 없다고 말하는 순간이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보통 혹은 일상적이라는 기준이 대중의 시각에서 정해지는 게 결코 아니라는 이유말이다. 우리는 모두에게 지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 그 ‘특별하다.’는 개념이 사전적인 정의의 그것을 담아낸다면, 이는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도, 또 다른 면에서는 부정적인 것에 해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이 ‘특별하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지금 이 순간 새롭게 바라봐야만 할 거다. 흔히 말하는 ‘보통’이라는 게 오히려 사랑을 정의할 때 지극히 긍정적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두에게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갈 때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게 되고, 그 사랑의 모양과 의미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생성할 때 비로소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새벽녘 일찍 문을 여는 빵집에 들어서는 그 순간, 그가 보도블록의 경계선을 실수로 넘어서는 그 순간과 드디어 마주하게 된다. 여태껏 가져온 경계가 한 번에 희석되며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영화는 말한다. 우리가 모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반드시 사랑의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