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동기

이미지: (주)고래픽처스

폭력은 거칠다. 거친 길을 홀로 걷기에 때론 높은 굴곡을 마주하곤 한다. 평탄하지 않고 거칠고 메마른 땅을 자연히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높은 곳만을 바라보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한곳에 머무르지 못한 채 계속해서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것과도 같다. 항상 어딘가에 이끌린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삶을 두고 언제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음악을 통해서도. 매번 똑같은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그렇지 않음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다양한 인생이 서로 맞부딪힐 때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부닥치고 깨지며 불꽃 튀는 폭력의 형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가리고 싶어도 감추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날 것의 모양을 그대로 드러낸 채 모든 걸 하루살이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과도 같다.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더 치열한 삶이 또 있을까. 폭력의 세계는 그런 거다. 눈에서 떨어지는 비굴함은 평생의 상처로 남고, 그 안에 남아있기에는 거친 세계를 감당하지 못한다. 소심한 게 아니고 소극적인 거고, 겁쟁이가 아니라 살짝 두려웠던 거라고 해두자. 본인의 부끄러움은 둘째치고 아니 이걸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그 거친 삶 속에도 나름의 애환이 존재한다. 이건 분명 인정해야 하는 거다. 우리가 잘 아는 노랫말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비겁하다 욕하지 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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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큼 그 애환에 눈길을 가두는 매체도 드물다. 누구나 그렇듯 그 매력에 빠져 참 지독하게도 많이 들여다보고 또 좋아하기까지 하니까. 언제나 같은 내용, 비슷한 포맷일지라도 높낮이는 분명 다르다. 느와르 어쩌고 하는 건 꾸미기에 달린 것 아닌가.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2012)가 특별한 삶을 다뤄서 지금까지 곳곳에서 이를 회자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다. 아마도 각각의 인물이 뿜어낸 개성과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해주는 영역, 그리고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를 얼마나 감칠맛이 나게 표현하느냐의 연출,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렇게 따지자면 영화 [뜨거운 피](2020)는 이런 세밀한 조화를 하나하나 찾아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인물의 개성이 특별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쏟아내는 이야기는 그저 이권 다툼에 지쳐버린 주인공이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국 조폭 영화 특유의 퀘퀘한 냄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법 심심한 연출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영화 [뜨거운 피]는 시선을 살짝만 돌려보면 의외로 여느 영화와는 다른 묘한 기운을 찾아볼 수 있다. 희수(정우 분)에게만 기대고자 하는 그 서사의 가운데에는 희수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여러 인물의 메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인물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인 희수의 삶을 해석하는 게 아닌, 오직 희수의 시선과 동선만으로 오히려 주변 인물의 삶을 엮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난 설정으로 남는다.

손영감(김갑수 분)의 선택이 구암의 안정을 이끄는 것이나, 용강(최무성 분)의 선택이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한 방을 부르기도 한다. 철진(지승현 분)의 선택은 언제나 그렇듯 잔잔하지만, 한편으로 묵직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선과 악의 경계에서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존재감을 절대 지우지 않는 모습이 마치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희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희수는 자신이 발을 디딘 구암에서의 삶에 이미 지쳐버린 상태다. 누구나 그렇듯 이 세계는 치열하게 한방을 가져가지 못하고 종국에는 그 피곤함에 지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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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윤지혜 분)과 아미(이홍내 분)의 존재가 그의 삶을 치열하게 파고들기에, 아마도 그는 이를 온전히 끌어안고 싶어 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두 사람은 그의 시선을 확연하게 잡아끌지 못한다. 오히려 희수가 마지막 한 방을 노리고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을 때는 개인적인 사정이 아닌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의 움직임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이 삶이라는 건, 지극히 주체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그게 폭력으로 얼룩진 삶의 표면적인 얼굴이고 희수에게도 그 기운이 시커멓게 드리웠던 거다. 결국 영화 [뜨거운 피]는 희수의 시선으로 가득 채운 이 어두운 기운의 속내를 꺼내 보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희수는 거칠고 메마른 땅을 홀로 내딛는 인물이었지만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물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살피는 피동적인 삶을 끌어안기에 급급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결심과 행위로 삶의 급반전을 기획한 건, 불안한 삶을 지탱해온 과거의 모든 걸 부정하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의 삶도 오롯이 버티고 있는 삶이었던 거다. 영화가 ‘뜨거운 피’라는 주제를 내세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어두운 곳에서 어렵게 삶을 지탱하고 있는 영화를 가득 채운 인물들의 삶이 결코 차갑거나 죽어있는 게 아닌, 양지를 지향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는 거다. 얼핏 암투 사이에서 지켜야 할 약속과 의리 등으로 덧칠되어버릴 수 있는 이 단어는 사실 알고 보면 희수 혼자만을 스포트라이트하는 게 아닌, 이러한 삶을 채색하고 있는 인물 모두에게 해당하고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거친 삶을 반드시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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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통해 내가 제대로 다듬어질 수 있다면 그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때론 내 삶에 어울리는 시간이 될 테다. 한국 영화가 유독 사랑하는 이 장르의 영역에서, 영화 [뜨거운 피]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요소를 거의 내세우지 않고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편이다. 이는 배우의 연기, 화려한 액션, 세밀한 연출 등이 아닌 폭력과 삶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시선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그 시선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열기만큼은 우리 삶 속 어딘가를 통해 계속해서 화려한 불꽃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지금 그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중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