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이미지: KBS미디어(주)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특별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주인공은 종교인이다.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와 김수환 추기경이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내레이션이 적극 개입하는 등 방송 다큐멘터리 성격이 짙고, 대체로 돌아가신 분의 삶을 조명하며 사회에 울림을 전하려는 주제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울지마 톤즈](이하 [톤즈], 구수환, 2010)와 같은 작품들이다. [톤즈]는 누적 관객 44만 4581명을 기록해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순위 상위 5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흥행은 2020년 각각 개봉한 영화 [톤즈 2](강성옥, 2020)와 [부활](구수환, 2020)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들 작품이 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면, [그 사람 추기경](전성우, 2014)과 [바보야](강성옥, 2013)은 故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종교마저 초월하자면 [법정 스님의 의자](임성구, 2012)도 있다.

KBS에서 제작해 극장판으로 개봉한 영화 [아픈 만큼 사랑한다](임준현, 2019) 역시 같은 선상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이번엔 ‘필리핀의 슈바이처’ 故 박누가 선교사 이야기다. 개봉한 지는 수 년이나 지났지만 최근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돼 꼭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사와 영화가 다루는 내용 양쪽에서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전술한 영화처럼 꾸준히 제작돼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보여주는 일련의 작품을 양식과 메시지에 따라 ‘휴먼+시사+종교’ 다큐멘터리 영화로 통칭하고, 이 글에서는 종교를 빼고 ‘휴먼 시사 다큐’라 줄여 부르기로 한다. 종교인을 다루고는 있지만 ‘종교 다큐’라는 다큐멘터리 재현 양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주인공이 종교인일 뿐인데 종교 다큐라는 이름을 붙이면 오히려 편견 때문에 감상을 해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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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봤으니까 아픈 사람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아니까.
그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고 싶고. 사실 아파보니까 세상이 다 귀찮았어요.
그래서 저는 아파봤으니까 그만큼 남들을 사랑하겠다는 뜻으로
내가 아픈 만큼 남을 더 사랑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메시지는 휴먼 시사 다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뚜렷한 매력이다. 특정 종교인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혹시 포교가 목적인 영화는 아닐까’ 싶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휴먼 시사 다큐는 종교를 초월해 워낙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주인공과 다른 종교 때문에 거부감이 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휴먼 시사 다큐를 만든 영화 감독들은 하나같이 사람 죽고 사는 곳 한복판에서 돈과 명예를 포기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골라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영화에서도 종교색은 거의 제거했다. 똑똑한 기획이다.

종교색이 강했다면 다수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았을 것이다. [아픈 만큼 사랑한다]는 ‘신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지만, 곧장 박누가 선교사를 이야기하며 눈물짓는 현지인들부터 보여준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덕을 베풀면 사후에도, 그것도 불타는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며 연명하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도록 했을까 생각할수록 눈물겹다. 정작 주인공 본인은 점점 아프고, 필리핀 사람들은 신앙심과 건강을 회복하는 이 비대칭을 통해 [아픈 만큼 사랑한다]는 종교보다는 휴머니즘 쪽을 강조한다. 흔히 사용하는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맥락에 따라 어떤 의미로 사용되든 ‘박애 정신’만큼은 공통 분모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진정한 ‘휴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KBS미디어(주)

영화가 끝나는 지점은 박누가 선교사의 삶이 끝나는 지점과 일치하지 않는다. 영화는 박누가 선교사 사후에 그가 운영하던 누가병원이 변화한 모습까지 담고 있어, 그가 필리핀 땅에 남긴 희망으로까지 나아간다. 동시에 영화는 시사적인 성격도 가진다. 반드시 정치 또는 사회 깊숙이 뿌리 박힌 문제를 심도있게 탐구한다고 시사 다큐멘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픈 만큼 사랑한다]처럼 갈등과 반목을 일삼다 예사로 놓치는 인류애를 재조명하는 데에 이른 작품도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 범주에 넣고 평가할 만하다. [아픈 만큼 사랑한다]는 아무것도 없던 학창시절엔 봉사활동 한다고 그렇게 열성이다가, 정작 손에 뭐라도 조금 쥐고 나니 남 돕는 일에 게을러지는지 모두가 아는 그 이유를 반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픈 만큼 사랑하게 하고, 아니 아플수록 더 사랑하게 하소서.
이 무거운 발걸음이 가벼운 발걸음이 돼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그런데 무교 입장에선 물론 거의 예수님 같은 박누가 선교사의 삶이 충분히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그와는 별개로, KBS에서 수시로 소위 ‘휴먼 시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배경이 궁금할 만하다. 쉽게 말해 TV 다큐멘터리의 극장판이다. 2012년 KBS 인기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서 한 차례 방영된 [아픈 만큼 사랑한다 – 필리핀의 슈바이처 박누가 씨]편은 물론 전술한 휴먼 시사 다큐 영화에는 방송 톤이 짙게 깔린 내레이션에서는 흔히 말하는 ‘방송 냄새’를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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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가 개봉한 2010년대까지만 해도 방송 다큐가 영화로 제작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큰 흥행을 기대하기 힘든 다큐멘터리 영화 특성상 수익은커녕 제작비 회수를 장담하기도 힘들다. 1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이 세 편이나 되는 지금과는 다르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는 다만 [울지마 톤즈]가 이례적으로 흥행한 2010년은 [워낭소리](워낭소리, 2009)가 300만 관객을 만나며 다큐멘터리 영화 시장을 확장하던 때와 시기적으로 겹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려던 시기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울지마 톤즈]가 개봉해 방송 다큐멘터리 영화의 극장 흥행 가능성을 열었다는 분석이 타당하다.

기왕에 비용을 들여 소재를 발굴하고 기획해 촬영 편집과 방영까지 마쳤다면, 이를 조금만 더 각색해 극장용으로 선보이는 것이 방송국 입장에서 어려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효과는 다양했다. 영화는 국가 간 외교에 활용되기도 했고, 영화를 통해 발생한 수익이 다른 방송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제작하는 자본금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지난 10년동안 다큐멘터리 양식도 전보다 넓어져 관객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를 보는 관객 수준도 전과 같지 않아서, 종교색을 지운 기획력만큼이나 이제는 ‘방송 냄새’를 빼려는 노력도 같이 해준다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