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풀잎피리

내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 중 하나는 분명 [죽은 시인의 사회]일 것이다. 주인공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설파했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현재를 잡아라’는 의미의 라틴어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자주 쓰이는 좌우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시와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고등학생 시절, 이 말은 정말 반짝이는 금구와도 같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을 찾아 읽고, 작품 속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딴 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문학 작품을 돌아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을 했던 인물, 극 중에서 키팅 선생님의 역할을 맡았던 로빈 윌리암스는 바로 이 정서의 중심에 있다. 이 영화 이후 로빈 윌리암스는 많은 이들의 ‘선생님’으로 자리 잡았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내 또래 가운데 교단에 서 있는 상당수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 키팅 선생님, 그리고 로빈 윌리엄스에게 정서의 빚을 지고 있을지도. 지금 그가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칠순 어르신이 되어있을 테다. 그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던 날, 아마도 나를 비롯한 키팅 선생님의 제자들은 바다 건너에서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했으리라.

어쨌거나 그런 우리 모두의 키팅 선생님, 로빈 윌리엄스가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된다는 뉴스는 그래서 당시에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엄청난 분장을 하고 ‘할머니’로 변신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그걸 확인하기 위해 정말 궁금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간 그가 보여준 신뢰감이 가득한 연기를 의심한 건 아니지만, 할머니 여장도, 뭔가 헐랭한 아버지의 역할도 무언가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로빈 윌리엄스는 지적이고 인간적인, 그러나 냉철하고 강한 키팅 선생님의 이미지가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우는 배우다. 이 작품은 정말 놀라웠고, 그는 이전의 키팅 선생님이 지워질 만큼 멋진 연기로 작품을 채웠다. 게다가 작품도 너무 좋았다. 슬프면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그런 작품이었다.
그 당시 바다 건너 나라의 결혼과 이혼의 이야기 그리고 자녀의 양육권과 면접교섭권에 대한 논쟁은 청소년인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논의였다. 하지만 그 안에 스며있는 아버지의 진심과 어머니의 근심, 그리고 아이들의 걱정은 분명히 전해졌더랬다. 당시는 부모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보기보다는 3형제, 그 중에서도 첫째 딸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봤던 것 같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자녀인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어떤 입장에 서야할까, 이런 생각 말이지. 그 와중에 엄마가 아빠가 아닌, 보다 더 근사해 보이는 아저씨랑 새 출발을 하려고 한다면 그건 또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까지 쉴 새 없이 하면서 봤던 기억.
이 작품의 개봉이 94년도였는데, 그때 이후로 벌써 30년이 가까이 흘렀다. 무려 28년 전이다. 그 사이 청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삼 남매의 입장에서 봐야했던 영화는 이제 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 더 타당해졌다. 이제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갈등을 바라보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상처를 염려하는 것이 가능한 나이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자녀 양육권과 면접교섭권 문제는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의 구성이 꾸준히 이야기 되는 지금, 다시 본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곳 한국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런 시대적 상황 덕분에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초연이 가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나 역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본 다음,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다시 봤다. 정말 새삼스럽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작품이 비로소 완성되는 건 연출과 각본과 배우의 조화와 함께 그걸 보는 관객이 함께하는 것이란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했달까. 그리고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생각도 함께. 뮤지컬은 뮤지컬답게 지금의 시점으로 몇 가지 디테일을 수정했고, 무대 예술인 만큼 무대 장치와 연기, 그리고 넘버들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그게 정말 좀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이 가진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이 돋보였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누구라도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라는 생각. 배우들의 연기 또한 발군. 내 경우는 정성화의 다웃파이어를 보았는데, 정말 첨언할 것이 없을 정도로 너무 훌륭했다.
이미 30년이 지난 작품이니 이제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이 작품의 엄마와 아빠의 결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90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의 입장에서 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우리나라는 이혼도, 한부모 가정도 익숙하지 않았고, 이렇든 저렇든 와하하하! 웃음으로 갈등으로 날리고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결말이라 응당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모든 드라마는 지지고 볶고 난리를 쳐도 결국은 모두 함께 봉합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게 가족드라마의 당연한 법칙이었다. 하지만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부모가 아름답게 헤어지고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마무리된다. 부모들이 결코 자녀들을 위해 다시 결합하여 살지 않는다. 그런 결말 덕분에 나는 이 작품이 온전한 해피엔딩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미래에는 그들 모두가 분명 재결합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30년을 살아왔다.

다시 본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결국 함께하는 것이 언제나 행복이 아님을, 각자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은 더 부단하고 고단하게 고민해야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 고민의 끝에 다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은 더 열심히 만나 사랑을 해야 하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름답게 헤어지고 그 이별을 받아들여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가 행복해 지는 최선의 길임을 주지시킨다. 그런 이 작품의 메시지가 비로소 지금이 되어서야 이해가 되어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는 정말 울컥한 느낌이 되었다.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과 이별한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고 또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가 좀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세상을 곁에 두고 누군가 그와 함께 그의 옆을 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좀 많이 서글펐다. 영화를 다시 보고 난 후, 이렇게 멋지고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 그런 훌륭한 배우가 지금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좀 많이 속상해서 더욱 그랬다.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시기를. 미세스 다웃파이어, 그리고 키팅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