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오드

최애가 감옥에 갔다. 태어나서 처음 기차를 탄 것도, 서울에 간 것도 모두 최애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랬던 최애가 구속됐고, 나는 그 모습을 보러 서초동의 법원까지 달려갔다. 3년 동안 가수 정준영을 열렬히 응원한 오세연 감독의 이야기다.

[성덕]은 10대 시절을 바친 스타가 범죄자로 추락하면서 괴로워하던 오세연 감독이 비슷한 처지의 덕후들을 찾아 인터뷰를 진행한 다큐멘터리다. 원래 오세연 감독은 자타 공인 성공한 덕후였다. 팬 싸인회에 한복을 입고 등장한 것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정준영 바라기’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팬카페에서는 ‘준만세’(준영만이 내 세상)라는 닉네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오빠의 한 마디에 전교 1등을 유지했고, 명문대에 입학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정준영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팬들의 사랑에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는 오빠는 감옥에 갇혔다. 이제 오빠를 오빠라 부르지도 못한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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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 오세연 감독처럼 직접 스타를 만나는 호사를 누려야만 성덕이 되는 건 아니다. [성덕]의 한 출연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팅에 성공하기만 해도 성덕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성덕이 되면 느끼는 기쁨은 비교할 바 없다. 그러나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듯, 덕질에도 굴곡이 있다. 스타라면 누구나 스캔들이라는 몸살을 앓는다. 스캔들이 스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지만, 팬의 바램과는 달리 단순히 몸살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팬이 구설수에 대처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다큐멘터리 [성덕]은 연예인의 구설수를 겪은 팬들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배신감과 당혹감을 내비치는 팬부터 범죄를 저질렀으니 욕을 먹어도 마땅하다며 분노를 퍼붓는 팬까지 있다. 알게 모르게 예상했다며 초연하게 반응하는 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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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자아성찰로 시작한 [성덕]은 좌절감, 분노, 애증 등 팬들의 다양한 감정을 살펴보면서 다큐멘터리로 거듭난다. 좋아한 연예인으로부터 배신당한 팬들을 모았고 이들을 인터뷰하니 다채로운 감정이 튀어나온다. 괘씸하다, 짜증 난다는 반응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죄 행위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것 같다며 자기혐오를 느낀다는 예상치 못한 반응까지 담겼다. 필터 없는 솔직한 인터뷰를 보면 부정과 분노를 거쳐 수용으로 끝난다는 ‘분노의 5단계’가 떠오른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성덕]은 제3자의 시선을 담는다. 정준영 사건을 단독 보도한 기자와 오세연 감독의 인터뷰는 자조적인 고해성사로 점철된 작품에 무게감을 더한다. 기자는 당시 팬들의 날선 비판에 시달린, 어찌 보면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상처받은 팬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오랜 세월 아껴온 존재를 어찌 단번에 부정할 수 있으랴. 기자의 담담한 어투는 지금도 어디선가 혼란을 겪고 있을 ‘성덕’에게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어서 오세연 감독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집회에 참가해 시선을 넓힌다. 논란이 터진 스타를 감싸는 마음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다. 덕질의 방식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기저에는 애정이 숨쉬고 있다. 덕질의 순간 순간은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이 양분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출연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한 대학생의 고백으로 시작한 [성덕]이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와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