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감정의 과잉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독이 된다. 특히 우리는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에, 최선을 다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장르가 뮤지컬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뮤지컬의 재미 요소는 감정의 폭발이다. 춤과 노래를 통해 이 순간의 느낌을 온전히 표출하는 일은 새롭고도 짜릿할 것이다. 1899년도 파리부터 2000년대의 뉴욕을 지나, 2022년도 대한민국까지. 정열과 열정을 담은 뮤지컬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으니, 우리의 건조하고 억눌린 일상에도 뮤지컬이 스며든다면 좋겠다. 그 황홀함을 스크린에 옮긴 감독들을 만나 보자.
물랑 루즈(2001) / 바즈 루어만

1899년 파리, 신분 상승과 성공을 꿈꾸는 뮤지컬 가수와 낭만파 시인의 운명적이고 서글픈 사랑을 그린 [물랑 루즈]. ‘물랑 루즈’는 보헤미안, 귀족, 사업가, 모든 이들의 욕망이 자유로워지는 곳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가진 세계이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 바즈 루어만 연출 작품으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또한 성공을 거뒀다. 오페라를 연출하던 배즈 루어먼 감독은 현란한 조명과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물랑 루즈]를 가장 정열적이고 낭만적인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냈다. 또한 ‘파티용 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감독답게 19세기 파리 배경에 20세기 후반 대중음악을 현대적으로 편곡, 삽입하며 다채로운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매혹적인 탱고와 경쾌한 록, 친숙한 팝의 조화는 귀를 사로잡고, 화려한 의상과 미술이 눈을 사로잡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작품이다. 바즈 루어만은 최근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를 그린 [엘비스]로 다시 한 번 음악 영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유령(2004) / 조엘 슈마허

오페라 극장을 지배하는 ‘유령’이 무명의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의 유령]. 프랑스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기간 공연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운 [오페라의 유령]은 30여 년이 넘도록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세기의 뮤지컬이다. 우디 앨런 영화의 의상 디자이너로 영화계에 입문했던 감독 조엘 슈마허는 할리우드의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로, 그의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강렬한 비주얼을 선사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독특한 개성이 명작에 잘 녹아들었고, [오페라의 유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샹들리에 신에서 그 연출력이 돋보였다. 가장 비극적이고 우아한 세기의 뮤지컬을 영화로도 꼭 감상해 보자.
드림걸즈(2006) / 빌 콘돈

전설적인 흑인 여성 트리오인 슈프림즈의 실화를 그린 [드림걸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제이미 폭스, 비욘세, 에디 머피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주목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철학을 전공한 감독 빌 콘돈은 [시카고]와 [위대한 쇼맨]의 각본가이며, [킨제이 보고서], [브레이킹 던], [미녀와 야수]의 연출가이다. 고전 뮤지컬부터 심오한 전기 영화, 뱀파이어 로맨스, 현대적인 판타지 뮤지컬까지. 장르의 경계 없이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초의 걸그룹 ‘슈프림즈’를 연기한 세 디바의 가창력과 카리스마에 빠져들게 되는 작품이다.
라라랜드(2016) / 데미언 샤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만난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이 미완성인 서로의 무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라라랜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는 황홀한 사랑, 순수한 희망, 격렬한 열정을 품고 있다. 주연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 존 레전드는 여러 시상식에서 각자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한때 재즈 드러머를 꿈꿨으며 [위플래쉬]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감독 데미언 샤젤은 [라라랜드]를 통해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로 등극했다.
1985년 생의 데미언 샤젤은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꼽히고 있다. 예술성과 작품성, 대중성을 모두 갖춘 감독이기에, 그의 차기작이자 황홀하고 위태로운 할리우드 스토리 [바빌론]의 개봉 또한 기대된다. 뮤지컬 영화를 넘어 명작으로 평가받는 [라라랜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평범하고도 특별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마 모든 꿈을 꾸는 이들은 지금도 [라라랜드]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채우고 있지 않을까.
씽(2016) / 가스 제닝스

상금 10만 달러와 함께 개최된 대국민 오디션, 꿈을 펼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동물들이 자신들의 무대를 시작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씽].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연출한 개성 넘치는 감독 가스 제닝스의 작품이다. 재치와 상상력으로 무장한 가스 제닝스의 유쾌하고 발랄한 에너지가 애니메이션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64곡의 트랙, 다양한 캐릭터와 스토리는 관객들을 ‘흥’에 취하게 만든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과 함께 종을 초월한 음악의 힘을 만끽해 보자.
인생은 아름다워(2022) / 최국희

죽음을 앞두고 첫사랑을 찾아 나선 아내와 그녀를 따라나선 남편의 유쾌한 동행을 그린 [인생은 아름다워]. 현재 상영 중인 류승룡, 염정아 주연, 최국희 감독 연출 작품으로,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로 소개된다. 볼링 천재들의 한판 승부 [스플릿], 1997년 외환 위기 사태를 그린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의 세 번째 상업영화로,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예정보다 2년 미뤄진 2022년에 개봉하게 되었다. 무뚝뚝한 남편, 헌신하는 아내, 철부지 아이들이라는 설정부터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죽음을 앞둔 아내가 첫사랑을 찾아가는 찬란한 여정 속에서 반가운 노랫말들이 들려온다. 이문세, 이승철, 최백호, 신중현부터 이적, 유열, 토이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가족 뮤지컬 영화의 탄생이다. 후반에 펼쳐지는 아름답고 흥겨운 파티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녹인다. 삶의 애환을 춤과 음악으로 그려낸 [인생은 아름다워]가 국내 뮤지컬 영화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