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욱

최초의 한국 영화라고 평가받는 [의리적 구투](김도산, 1919)가 상영된 날을 기념하자면 한국 영화는 올해 10월 27일로 103주년을 맞이한다. ‘한국영화의 날’을 맞아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10편을 추려 소개해보려고 한다. 국내 다큐 영화사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영화사에 분명하고 선명한 전환점을 만나 흔적들을 남기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달해왔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미친 영향력만을 우선 고려해 10편을 먼저 추리고, 작품성과 중요도를 감안해 나름의 순서를 결정했다. 독자들이 작품을 찾아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얼마나 쉽게 구해볼 수 있는지 역시 작품 선정에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아래에 우리나라 다큐 영화사에서 빛나는 10편을 소개한다. 두 편의 단편, 여덟 편의 장편이 포함됐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작품들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이번에 소개하지 못한 작품 중 한국 다큐 영화를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영화들도 다룰 예정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들을 만나보자.

10.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2014)

이미지: CGV아트하우스 , (주)대명문화공장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남긴 영향만을 놓고 보자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이번 주제에서만큼은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이 큰 작품이다. 누적 관객 480만 2642명은 톱배우가 출연한 어지간한 극영화 흥행성적도 능가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기록으로는 10년 가까이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거저 따라온 흥행이 아니다. 투자와 배급 전략 등 여러 각도에서 흥행 원인을 분석할 수 있지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특히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이 가족 서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또 영화계에서 가족 서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주었다. 76년을 함께 한 노부부의 사랑과 생사는 속절없이 울 수밖에 없는 소재다. 기존 멜로드라마가 가진 서사 전개와 구성 요소들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흥행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긍정적이지만 작품성을 아쉽다 판단하게 할 만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9. 다이빙 벨(이상호, 2014)

이미지: 시네마달

절대 작품성만으로 [다이빙 벨]을 무려 9번째에 꼽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감독이 카메라 앞에 나서서 눈물 짓고, 그가 이끌고 싶은 방향대로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전개하는 모습은 전통적 관점에서 보자면 다큐멘터리 영화 윤리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도 볼 만하다. 영화적 결함이 많다. 기자에서 영화로 갓 넘어온 감독의 투박함, 좋게 말하면 순수함이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다만 2010년대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 사회적으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하면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다이빙 벨]을 꼽는다. MBC 해직기자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붙는 감독 이상호의 필모그래피가 어느 덧 다섯 번째 작품 [전투왕](2022)에 닿았지만 그의 대표작은 여전히 [다이빙 벨]이다. 이 영화를 초청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독하게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조차 소재만 가지고 양쪽으로 갈라져 싸우며 [다이빙 벨]의 화제성을 키웠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다. 그중 [다이빙 벨]은 가장 먼저 세월호 참사를 소환한 작품이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 국내에 제작 유행했던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8. 노무현입니다(이창재, 2017)

이미지: 영화사 풀 , CGV아트하우스

[다이빙 벨]처럼 퇴직 언론인들이 영화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빌려 언론 역할을 수행한 작품들을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부른다면, [노무현입니다]는 촛불 혁명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했을 때 특정 정치인을 소환해 애도한 이른바 ‘노무현 다큐멘터리 제작 유행 현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티지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던 ‘노무현 다큐’ 초기작 [무현, 두 도시 이야기](전인환, 2016)과 달리 [노무현입니다]는 패기 넘치는 한 정치인의 영웅 서사, 또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연설이 가지고 있는 ‘말의 힘’, 주변인들의 인터뷰에 의존해 200만 명 가까운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시민 노무현](백재호, 2018)과 [노무현과 바보들](김재희, 2019)이 잇따라 개봉해 ‘노무현 다큐’ 제작 유행을 이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입니다]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가지는 비중이 적지 않다. 이후로 정치인 인물 다큐멘터리는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며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7. 워낭소리(이충렬, 2009)

이미지: 인디스토리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했듯이, 성공한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워낭소리]의 극장 배급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장성’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의가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가 [워낭소리] 개봉 시점으로부터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재 성격이 강한 예술로 인식돼 개봉관을 잡기가 몹시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시장의 도래를 단숨에 앞당긴 작품이다. [워낭소리]가 극장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후에 제작된 몇몇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시장 논리를 통해서만 철저히 상업적으로 기획되기도 했다.

6. 울지마, 톤즈(구수환, 2010)

이미지: (주)마운틴픽쳐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요한 경향으로 인물 다큐멘터리가 손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종교인은 단골 소재가 된다. [울지마 톤즈] 시리즈와 [부활](구수환, 2020)을 포함해 [그 사람 추기경](전성우, 2014)과 [바보야](강성옥, 2013)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2010년 개봉한 [울지마, 톤즈]는 누적 관객 44만 4581명을 기록하며 종교인을 다룬 인물 다큐멘터리 영화 중에서는 가장 흥행했다. 내레이션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방송 다큐멘터리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고인의 삶을 조명하며 사회에 울림을 전하려는 주제의식이 강한 만큼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한다. 이미 방송으로 한 차례 제작돼 방영된 다큐멘터리들이 극장용으로 다시 편집돼 개봉하는 경우는 지금은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울지마, 톤즈]가 개봉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드문 사례였다. 특히 [울지마, 톤즈] 이후의 종교인 인물 다큐멘터리 영화는 [울지마, 톤즈]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거의 무조건 받고 있다.

5. 자백(최승호, 2016)

이미지: (주)씨네마달

[다이빙 벨]이 한국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등장을 알렸다면, [자백]은 “탐사보도 스릴러 형식의 고발과 폭로를 담은 정치적 다큐멘터리 영화”(이승민)로 평가받으며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제작 유행의 가장 한복판에서 언급되는 영화이다. 감독인 최승호가 MBC에서 해직된 경력, 그리고 그가 겨눈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지점은 영화가 정보 기관을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대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을 지목하고 있다. 당시 정권의 방송장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자 공중파, 종편, 케이블까지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시민들은 팟캐스트 등의 SNS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 언론에 관심을 돌렸고, 또한 공정 방송의 빈 자리를 다큐멘터리 영화가 채워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자백]은 이 기대에 부응하며 누적 관객 14만 명을 동원한 국내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다큐멘터리가 시대와 긴밀하게 조응해 탄생하는 하나의 예술이라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어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자백]을 꼽을 수 있다.

4. 부재의 기억(이승준, 2018)

무수히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루었지만 어떤 작품은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됐으며 다른 작품들 역시 참상 그 자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극적 서사를 갖추며 익숙한 방식으로 영화를 전개한다. 세월호 참사에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접근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단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하면 작품성 여부와 상관없이 비평을 자제했다. 그런 점에서 [부재의 기억]은 국가가 부재했던, 리더십 공백을 서사보다는 이미지로 그려낸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재현되는 영상들 사이에서 삽입되는 그림과 문장들이 ‘왜’라는 질문에 종속되기보다는 ‘무엇이 빠져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생충](봉준호, 2019)이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2020년 같은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후보에 올라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3.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

이미지: 푸른영상

태동기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은 대체로 사회 운동 또는 현장 투쟁을 기록하여 지역 사회 공동체 상영을 통해 토론을 유도할 목적으로 이루어져왔다. 이때 정치적 올바름을 기반으로 부조리한 현장을 고발하고 알리는 계몽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데, [상계동 올림픽]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항상 손꼽히며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작품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홍보 영상과 상계동 주민들의 주거권 투쟁 현장 영상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전반부의 몽타주 충돌만으로 당시 군부 정권을 비판하려는 의미를 간단하게 생성하고 있다. 또 상계동 주민들과 3년여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촬영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정신 역시 태동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태동기를 이야기할 때 [상계동 올림픽]을 반드시 언급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2. 디어 평양(양영희, 2006)

이미지: 씨네콰논코리아

비디오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독 개인의 내밀한 생각과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이 일련의 작품 양식들을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부르는데, 대개는 감독 개인을 일인칭으로 다루거나 가족을 촬영 대상삼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의 먼 집](이소현, 2015) [B급 며느리[(선호빈, 2017) [아버지의 이메일](홍재희, 2012)과 같은 작품들이다. 이 중에서도 [디어 평양]은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 뛰어난 사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한 재일교포 부친을 소재로 양영희 감독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에 고착화된 냉전을 응시한다. 그리고 사적 경험을 관객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이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며 담론의 크기 역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1.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2011)

이미지: 시네마 달

[두 개의 문]은 흔히 ‘용산 참사’라고 부르는 사건 현장을 인터뷰이의 진술과 법정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한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정치 권력에 저항하며 성장해 온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주로 투쟁 현장에 카메라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왔는데, [두 개의 문]은 이러한 관습에서 벗어나는 경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 두고 “기존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습을 확장하는 동시에 일탈하고 있다”(이승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동시에 [두 개의 문]은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던 사건의 진실을 피해자들에 집중해 파헤치는 스릴러 문법을 적극 차용하고 있다. 관객 수 7만여 명 역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결코 적은 흥행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의 태동을 알린 초기작으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견해이다. 우리나라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집권기와 겹친다. [두 개의 문]은 이전까지 한국 다큐멘터리가 이룩해 온 양식적, 미학적 성취를 동시에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도 영화관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진지하고 무거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