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첫사랑의 기준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처음 좋아한 사람, 가장 많이 좋아한 사람, 처음으로 설렜던 사람, 처음으로 키스한 사람, 처음으로 앓게 한 사람 등등. 기준이 어찌 됐든 모든 첫사랑이 흑역사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무모하고, 서툴고, 촌스러웠으니까. 이러한 이유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 또한 납득이 간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난 후에 우리는 알게 된다. 사실 첫사랑은 거들 뿐, 모든 건 성장을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래 첫사랑에 빠진 배우들의 얼굴을 보며, 각자가 예쁘게 성장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 / 히스 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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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원작으로 하는 하이틴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속에서 앳된 히스 레저는 첫사랑에 빠진 소년 패트릭을 연기했다. 독특한 호주 악센트를 구사하는 패트릭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며 좋지 않은 소문이 파다한 문제아로, 록 밴드를 좋아하는 괴짜 소녀 캣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장난스러웠던 패트릭의 구애작전은 점차 진심이 되고, 두 사람이 결국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는 러블리 매력 뿜뿜 품어내는 로맨스다. 특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세레나데 ‘Can’t take my eyes of you’를 부르던 히스 레저의 모습은 아직도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다크 나이트] 속 무자비한 조커와 [브로크백 마운틴] 속 가련한 애니스 이전에, 그에게도 이렇게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소년 시절이 있었다.

플립(2010) / 매들린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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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소년소녀의 귀엽고 설레는 무지개빛 첫사랑을 그린 [플립]. 솔직하고 용감한 7살 소녀 줄리는 옆집 미소년 브라이스에게 첫눈에 사랑을 직감하고, 6년 동안 한결같이 열렬한 구애를 펼친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 줄리를 연기한 배우 매들린 캐롤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방식으로, 때로는 대담하고 솔직한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러브 레터보단 그림일기에 가까운 이 무공해 로맨스는 가족애의 뭉클함과 유년의 아릿한 성장통까지 담아낸다. 매력적인 마스크를 가진 매들린 캐롤은 이후 [아이 캔 온리 이매진]으로 다시 한번 첫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입소문만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이제는 첫사랑의 바이블이 된 [플립]의 작고 소중한 로맨스를 지켜보자.

건축학개론(2012) /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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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의 건축사 승민이 15년 만에 나타난 첫사랑 서연과 재회하며, 잊고 살았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회상한다. 이용주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놓은 [건축학개론]은 근사하게만 보이던 건축가의 ‘찌든’ 현실을 고증했고, 숨기고 싶었을 남자의 ‘찌질의 역사’ 또한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 역사 속에서 생기 넘치던 소년은 초라한 아저씨가 되었고, 가만히 있던 첫사랑은 원망과 패배의 대상이 되고 만다. 숫기 없는 어린 승민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은 풋풋한 연기를 통해, 그 찌질함과 비겁함마저 순수하게 포장한다. [파수꾼] 속 아웃사이더 소년 기태부터 [박열] 속 열혈 독립운동가 박열, [사냥의 시간] 속 희망 없는 청년 준석 등 다양한 연기를 소화하고 있는 이제훈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 티모시 샬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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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소년 엘리오의 여름보다 뜨거웠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놓은 그의 대표작이며, 첫사랑 영화의 마스터피스로 불리는 작품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엘리오는 여름 손님으로 찾아온 스물넷 청년 올리버에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긴 유약한 소년이다. 동경 혹은 질투라고 여겼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고백은커녕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조차 버겁다. 올리버가 떠난 후, 오래도록 수화기를 붙잡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단념한다. 풋사랑이라기엔 꽤나 아픈 경험이다. 원작 소설의 섬세한 감정선에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가 어우러졌고, 첫사랑이라는 애틋한 경험에 피할 수 없는 청춘의 성장까지 더해진다. 티모시 샬라메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018) / 라나 콘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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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했던 남자들에게 몰래 적은 러브레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송되면서,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한 소녀의 연애사를 그린 넷플릭스 하이틴 로맨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매번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남몰래 연애편지를 써온 ‘금사빠’ 라라 진은 한 소년과 가짜 연애를 시작하며, 요란하고 명랑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뜻하지 않은 흑역사 대방출이었지만 달콤한 연애의 시작이 되고, 더욱 단단해지기 위한 성장의 과정이 됐다.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란 배우 라나 콘도어가 한국계 미국인 소녀 라라 진을 연기했고, 수많은 아시안 소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시즌 3까지 제작되었다. 원작 소설을 읽은 후 “바로 내가 꿈꾸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던 라나 콘도어의 ‘꿈’이 곧 아시아 소녀들의 판타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주인공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뻔한 하이틴 영화에 과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세기 소녀(2022) / 김유정

이미지: 넷플릭스

절친의 첫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하는 열일곱 소녀 보라의 관찰 로맨스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20세기 소녀]. 작품 런칭 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첫사랑의 추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우연히 발견된 낡은 비디오테이프는 20세기의 기억을 불러왔고, 그 시절의 보라는 예상치 못한 두근거림과 함께 다채로운 감정을 겪고 있다. 우정 앞에 물불 안 가리던 씩씩한 보라도 처음 겪는 사랑 앞에서는 수줍은 소녀가 된다. 아역 시절부터 꾸준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김유정이 주인공 보라를 연기하며,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첫사랑 아이콘이 되었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세기말 감성에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등 신선한 청춘 배우들의 시너지가 더해져, 청량하고 싱그러운 20세기 로맨스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