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가을 극장가를 휩쓸었던 [자백], [리멤버], [동감]은 모두 리메이크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원작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다 현대적으로, 각국의 흐름에 맞게, 감독의 개성대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리메이크 연출은 매력적이다. 동시에 원작이 있기 때문에 연출의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아쉬웠던 원작은 제대로 다듬고, 흥행한 원작은 다시 한번 영광을 부활시켜야 하니 말이다. 그 부담감을 안고, 과감하게 리메이크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을 살펴본다.

바닐라 스카이(2001) / 카메론 크로우

이미지: 파라마운트 픽쳐스

잘생긴 외모와 막대한 재산을 가진 남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며, 절망과 자괴감에 휩싸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바닐라 스카이]. 카메론 크로우 연출, 톰 크루즈 주연의 [바닐라 스카이]는 1997년 제작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계속해서 환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충격과 공포까지 선사한다. [바닐라 스카이] 역시 원작의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여자 주인공 또한 페넬로페 크루스로 동일하다. 원작과의 가장 큰 차이라면,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향기가 짙어졌다는 점이다. 반전의 충격과 공포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꼭 스포일러 없이 감상해야 한다.

쉘 위 댄스(2004) / 피터 첼섬

이미지: 미라맥스 필름

성공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는 샐러리맨이 난생처음 사교댄스에 빠져, 완전히 생소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쉘 위 댄스]. 1996년 개봉한 동명의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피터 첼섬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며 리처드 기어,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을 맡게 된다. 인생이 지루한 중년 샐러리맨의 춤바람을 지켜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뭉클함을 가져온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충직하고 성실한 중년이 처음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뒤늦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경험한다. 축 늘어졌던 몸을 바로 세우고,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그의 일탈은 많은 가장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준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 / 데이비드 핀처

이미지: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부패 재벌을 폭로하는 신념 강한 기자와 범상치 않은 천재 해커가 40년째 미궁에 빠진 사건을 조사하며, 잔혹한 악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스릴러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웨덴의 베스트셀러 추리 스릴러 소설 [밀레니엄 3부작]을 원작으로 하며, 2009년 동명의 스웨덴 영화가 먼저 개봉되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 리메이크 작품까지 호평을 받는 귀한 작품이다. 충격적인 실종 사건과 가족 역사의 비밀이라는 어두운 소재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날카롭고 서늘한 연출과 어우러져, 완성도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 탄생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루니 마라의 독보적이고 치명적인 존재감 또한 여운을 남긴다. 다만 꽤 인상적인 작품임에도 후속편이 나오지 않아 많은 영화팬들에게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 민규동

이미지 : (주)NEW

리메이크에 도전한 감독은 할리우드에만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여러 리메이크 영화가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불평, 독설을 쏟아내는 아내와 헤어지고 싶은 남자가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는 로맨틱 코미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대표적이다. 2008년 개봉한 아르헨티나의 영화 [내 아내의 남자친구]를 원작으로 한다. 국경을 넘은 결혼의 보편성과 부부의 사랑과 전쟁을 소재로 하며, 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허스토리]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현실적이고도 매력적인 연출에 임수정의 사랑스러움, 이선균의 히스테릭, 류승룡의 익살스러움이 더해졌다.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여자이지만 어쩐지 남편에게만은 유난히 투덜거리는 아내 정인, 비겁한 방법으로 이혼을 계획하는 남편 두현, 일생의 화룡점정을 위해 정인을 유혹하는 카사노바 성기의 삼각관계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관계성이며, 뻔하지 않게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완벽한 타인(2018) / 이재규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여러 친구들이 모인 커플 모임,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는 게임이 시작되는 블랙코미디 [완벽한 타인]. 2016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원작으로 하며, 한국을 비롯해 그리스, 스페인, 터키, 인도, 프랑스 등지에서 18차례 리메이크되어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로 기네스북에 등록되었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리메이크 연출을 맡았다. 핸드폰 하나에 죽고 사는 현대인의 일상을 날카롭고 유쾌하게 풍자했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심리전은 우스꽝스럽고도 긴장감 넘치게 묘사된다. 다를 것 같지만 다를 것 없는, 전 세계의 미묘하고 은밀한 심리전을 엿보는 것도 재미 요소가 될 것이다.

동감(2022) / 서은영

이미지: CJ CGV

1999년의 용과 2022년의 무늬가 무전기 하나로 사랑과 우정을 쌓아가는 판타지 로맨스 [동감]. 2000년 제작된 동명의 한국 영화를 원작으로 하며, 원작은 유지태, 김하늘 주연으로 한국 멜로 최고의 수작이라 불린다. 1979년과 2000년에서 1999년과 2022년으로, 20년의 배경 차이가 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순백의 하얀색이 떠오르던 원작에 핑크빛을 한 스푼 더해, 잔잔하고 깨끗한 감성을 보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재해석한 것 또한 특징이다. 10대들의 상처와 치유를 그린 [초인], 아이와 어른의 유대를 그린 [고백]을 연출하며 줄곧 따뜻한 시선으로 청춘을 응시하던 서은영 감독이 리메이크 연출을 맡았다. ‘연결’이라는 소재를 자주 다루던 감독에게 어울리는 리메이크 작품이다. 여기에 배우 여진구, 조이현, 김혜윤, 나인우 등 떠오르는 청춘 배우들의 등장으로 신선함까지 준다. 원작의 팬들은 기억할 아름다운 선율의 OST는 현재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로 꾸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