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얼굴 좀 보자. 으레 건네는 인사말이지만 연말에는 진심이 조금 더 담긴다. 겨울이 되면 그리운 얼굴이 왜 더 보고 싶은지. 코 끝을 스치는 추위 때문일까, 아마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간다는 마음 때문일까. 일상에 치여 만나지 못해도 친구라는 이름은 떠올리기만 해도 든든하다.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조각, 우정을 다룬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그린 북 – 친구와 여행가서 다투신 분? 여기 돈독한 사이로 돌아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클럽 보디가드로 일하던 토니 발레롱가가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가 되어 8주간의 투어를 동행하는 여정을 그린 실화 기반 영화다. 피부색부터 말투, 식성까지 어느 것 하나 닮지 않은 이들은 여행 내내 부딪힌다. 초반에는 토니의 급한 성미가, 후반에는 돈의 취약함이 위기를 유발하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이끈다.

[그린 북]의 가장 큰 매력은 돈과 토니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면 절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영화는 끝과 끝에 있는 둘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자존심이 강한데, 고집을 꺾고 진심을 공유할 때 차오르는 감동과 희열은 왜 이 영화가 시상식을 휩쓸었는지를 증명한다. 세간의 편견과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편협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된 토니와 돈. 이들의 끈끈한 우정이 빛나는 [그린 북]은 혼자 봐도 좋고 친구나 연인, 가족 그 어느 누구와 봐도 감동적이다. 참고로 치킨을 먹으며 시청하면 재미가 배가할 것이다.

언터처블: 1%의 우정 – 1%의 접점이 낳은 100%의 우정

이미지: (주)NEW

전신 마비인 백만장자 필립이 빈민가 출신 드리스를 간병인으로 고용하면서 특별한 우정이 시작되는 [언터처블: 1%의 우정](이하 언터처블). 앞선 [그린 북]과 마찬가지로 [언터처블]도 실화 기반 영화다. 드리스는 취업보조금만 받고 면접에서 탈락할 생각으로 필립의 간병인 자리에 지원하지만 드리스의 털털한 태도에 흥미를 느낀 필립이 그를 전격 채용한다. 간병 초보인 드리스 때문에 위태로운 상황도 벌어지지만, 그가 필립을 장애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 대하면서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흔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만, [언터처블] 속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없어도 진솔한 우정을 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위 1% 재력으로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필립과 거칠지만 유쾌한 드리스. 자라온 배경도 인종도 다르지만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언터처블]은 본국 프랑스에서 무려 19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야말로 ‘언터처블’한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170만 명을 동원했고 이후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 됐다.

세 얼간이 – 두려울 땐 주문을 외쳐봐요, 알 이즈 웰~

이미지: 와이드 릴리즈(주)

인도의 초일류 대학교에서 만나 영혼의 단짝이 된 삼총사를 그린 영화다. 아직 국내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인도 영화임에도 [세 얼간이]는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뮤지컬 시퀀스는 전형적인 인도 영화의 특성을 보여주지만 사실 [세 얼간이]는 한국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영화가 지적하는 기형적인 교육열과 경쟁 과열, 주변 시선 의식은 인도와 한국 간 이질감을 지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사회적 풍토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섣불리 모험을 택하지 않는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는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반기를 드는 인물은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자랑하며 트러블메이커로 낙인 찍힌 란초다. 란초는 때로는 큰형처럼, 때로는 철없는 막내처럼 굴면서 자신의 두 친구에게, 나아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신을 속이고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산다면 과연 행복할까? 란초는 이를 도발적이면서도 간절하게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기 두렵다면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보자. 여기에 다 잘 될 거라는 의미가 담긴 ‘알 이즈 웰’을 되뇌며 마음의 짐을 덜어보라.

토이 스토리 – 특별하지 않은 일상도 친구가 있다면 충분해!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스튜디오의 개국공신인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 우디와 버즈가 일련의 소동을 겪으면서 차이를 극복하고 죽마고우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라 아이들만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 [토이 스토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서 우정과 포용, 행복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로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영화에는 여러 명장면이 있지만, 버즈가 자신이 우주비행사가 아닌 그저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에는 특별하다고 믿다가 크면서 현실의 벽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자각하고 좌절하지만 이내 다른 장난감들의 도움으로 우뚝 서는 버즈. 우리가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친구가 건넨 손에 담긴 온기 덕분이다. 우디와 버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정이라는 키워드는 주제곡 ‘You’ve got a Friend in M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세월이 흘러도 우리 우정은 절대 변치 않아”라는 가사가 주제를 잘 나타낸다. 감동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맞물린 이 곡은 [토이 스토리 4]까지 시리즈에 꾸준히 등장하며 작품의 의미를 공고히 다지는데 기여했다.

여중생A – 우정은 늘 아름답지는 않지만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이미지: 롯데 엔터테인먼트

어른이 되면 인간관계에 무디어지곤 하지만, 학창 시절에는 인연 하나 하나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렇듯 학창 시절 우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면서도 종종 생체기를 남기곤 한다. 앞서 소개된 영화들이 우정의 따뜻한 면모에 초점을 맞췄다면, 동명 웹툰이 원작인 [여중생A]는 우정의 씁쓸한 뒷면을 부각했다.

따뜻한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정다운 우정을 예상했다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여중생A]는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에 존재하는 미묘한 계급과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외톨이의 현실을 숨 막히게 그려냈다. 뜻밖에 찾아온 우정에 들뜨고 이내 추락하는 주인공 ‘미래’의 모습은 기쁨과 슬픔, 즉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우정의 모순을 서늘하게 담아냈다. 시린 감정이 눅진하게 에워쌌지만 그럼에도 [여중생A] 안에는 조용한 위로가 담겨있다. 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연이어 터지는 시련에도 꿋꿋이 나아가는 주인공이 그 예다. 우정에 아파한 적 있다면 흔들릴지 언정 꺾이지 않는 미래를 보고 위안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