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린 나는 덜 아팠을까. 이토록 허무한 담론으로라도 다독여주고 싶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비극을 처음 마주했던 사춘기 시절이 그렇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의 작은 몸을 탓하며 힘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시간이 흘러, 머리만 커진 시시한 어른이 될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란, 시시해진 내가 덜 시시했던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마음이 몸보다 커서 버거웠던 어린 나에게 보여 주고픈 보물 같은 영화 다섯 편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A.I.> – 인간을 사랑하는 로봇 소년의 슬픈 여정

이미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미래의 지구,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인조인간의 봉사를 받으며 살아간다. 단 한가지, 사랑만 빼고. 여기서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로봇 소년 데이빗은 진짜 인간이 되어, 잃어버린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사실 데이빗은 모니카 부부의 입양 로봇이며, 냉동된 친아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체체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을 장착한 로봇이기에 진심으로 인간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 균열이 커지자 외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그는 결국 2천년의 세월을 기다려 엄마와의 짧은 하루를 보낸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의 외로움을 SF 장르와 엮어낸 영화 <A.I.>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스탠리 큐브릭이 원안을 구상한 작품이다. 소년은 사랑이라 말하고, 인간들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 소년 데이빗처럼, 현실의 외로운 아이들 또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유년이란 그 자체로 사랑받기 위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두 거장은 냉소와 낭만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준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 열한 살 소년들이 만드는 판타스틱 데뷔작

이미지: Celluloid Dreams

80년대 영국, 남몰래 혼자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래던 윌은 마을의 최고 악동 리를 만나, 초특급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원대한 꿈을 가진 두 악동은 갖가지 시련들로 삐걱대면서도 생애 첫 우정을 나눈다. 어른의 눈에는 귀엽기만 한 놀이터와 동네 골목길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재미난 무대가 된다. 어린 우리도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즐겁다는 이유 하나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소중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성장 영화다. 어른의 세상은 아주 시시하니, 조금 더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꿈을 가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말이다. 

이 발칙하고도 깜찍한 영화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연출해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가스 제닝스 감독의 작품의 자전적 이야기다. 1980년대를 지나온 그는 부모의 비디오 카메라를 훔쳐 영화를 찍곤 했으며, <람보> 속 용맹한 해적을 보며 사춘기의 불안과 혼란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선사한 두 아역배우는 이 작품으로 영국 아카데미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두 소년에게는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데뷔작이 되었다. 스필버그에 도전하는 소년의 야망과 즐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 애틋한 첫 우정에 귀여운 매력까지 고루 갖춘 작품이다.

<우리들> –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언제나 혼자인 외톨이 선이 전학생 지아를 만나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순식간에 세상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된다. 반짝이는 여름을 함께 보내고 개학 후, 지아는 선을 외면하고, 선은 결국 지아의 비밀을 폭로해 버리고 만다. 첫 비밀 공유, 첫 외면, 첫 다툼, 첫 화해까지, 사소하고 복잡미묘한 열한 살의 인간 관계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열한 살만이 공감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다. 외면하고 외면당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손을 내밀고 내치는 이 아이들을 보면 어른의 다사다난한 인간 관계가 겹쳐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싸우고 때릴 시간에 더 함께, 같이 놀아야 한다는 말이다. 

어른들을 감동시키는 아이들의 세상을 그린 <우리들>은 뛰어나고 세밀한 관찰력을 가진 윤가은 감독이 연출하고, 이창동 감독이 총괄로 참여한 작품이다. <콩나물>, <손님>, <우리집> 등 소중한 성장을 기록하는 윤가은 감독은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보인다. <우리들> 역시 사랑, 미움, 질투 등 진짜 이야기와 진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진지하고 사려 깊은 탐구가 엿보인다. 따뜻한 빛과 온기, 맑고 강한 울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몬스터 콜> – 치유에 관한 가장 동화적인 이야기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기댈 곳 없이 빛을 잃어가던 소년 코너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거대한 몬스터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외면했던 마음 속 상처들을 마주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코너를 찾아오는 순간들은 모두 소년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순간들이다. 지우고 싶은 일기장의 한 구절이고, 절대 씻기지 않는 깊은 상처다. 몬스터는 무섭고 괴상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따스한 말들로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결국 성장은 개인의 비극과 교감하고, 화해는 순간에야 이루어진다.

치유에 관한 가장 동화적인 이야기를 그린 <몬스터 콜>은 <오퍼나지>, <더 임파서블>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작품이다. 또한 <판의 미로>를 통해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미술감독 유제니오 카바예로가 자신만의 남다른 예술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두 파트너의 합작은 현실과 환상에 대한 탁월한 연출로 이어진다. 현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아이를 가장 아름답고 특별한 방식으로 위로한다.

<원더> – 편견에 맞서며 세상을 바꾸는 기적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 그린나래미디어(주)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나 27번의 성형수술을 견딘 어기가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용감하게 첫발을 내딛는다. 그의 긍정적인 성격과 용기는 주변인들도 하나둘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특별한 아이에게는 특별한 세상이 필요하다는 말로 설명되는 작품이다. 우리는 어기일 수도, 어기의 무례한 주변인일 수도 있다. 혼자만의 세상에 숨으려 하는 어기에게 용기를, 편견 가득한 주변인들에게는 시선의 환기를 주는 작품이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원더>는 트레처콜린스 증후군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다. 어기는 모든 편견에 맞서며, 세상을 바꾸는 기적을 보여준다. 천재 아역 배우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와 오웬 윌슨이 따뜻하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완성시켰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모두를 변화시키는 이 가족을 보면, 우리가 왜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