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흰 피부를 가진 배우 앤 해서웨이는 비주얼과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배우다. 완벽한 비주얼과 건강한 웃음이 매력적인 그는 로맨틱 코미디부터 액션, 뮤지컬 등 장르도 가리지 않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고등학생부터 공주, 여왕, 신입사원, 캣우먼, 마녀 등 다채로운 변신을 선보이는 앤 해서웨이의 연기 변천사를 살펴보자.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 / 미아 서모폴리스 역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어느날 갑자기 당신이 공주가 된다면?’이라는 포스터 문구로 10대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자신이 왕위를 이을 공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평범한 고등학생이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써내리는 이야기로, 앤 해서웨이가 스크린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하이틴 대표작으로, 촌스러운 외모와 대인공포증으로 왕따를 당하던 소녀가 자신을 극복한다는 설정이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1편에서는 공주로, 2편에서는 왕비로 거듭나는 모습을 통해 메이크오버의 정석을 보여준다. 또한 디즈니는 현재 3편을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3편은 리부트가 아닌 속편으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 / 앤드리아 삭스 역

이미지: (주)퍼스트런 , 글뫼

달콤한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회초년생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커리어우먼을 꿈꾸는 혹은 살아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로, 뉴욕의 화려함 속에 묻혀 있던 보편적인 고충들을 토로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사회에 발을 들인 사회초년생이라면 반드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또한 패션 컬렉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한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앤드리아 삭스는 뉴욕 최고의 패션 매거진에 기적같이 입사했지만, 악마 같은 편집장의 쭈구리 비서가 돼 온갖 잡일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롤모델이라고 언급한 메릴 스트립과 호흡을 맞추며, 악마 상사와 신입사원의 살벌하고 유쾌한 케미를 보여줬다. 또한 촌스러운 의상만 입는 신입사원에서 점차 화려한 명품 의상을 걸치는 패셔니스타로 변모하며, 앤 해서웨이의 주특기인 메이크오버 연기도 완벽히 소화했다.

레이첼, 결혼하다(2008) / 킴 부크만 역

이미지: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지만 결국 기댈 수밖에 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첼, 결혼하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아직 서로에게 원망이 가득한 그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애증으로 얼룩진 혈연의 관계성과 깊게 곪아있던 킴의 상처,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따뜻하지만은 않기에 현실적이다. 앤 해서웨이는 약물중독으로 재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문제아 동생 킴 역할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역할을 위해 처음 담배를 피웠다고 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아 여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앤 헤서웨이의 탄탄한 내공이 이 작품을 통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 셀리나 카일/캣우먼 역

이미지: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DC 코믹스의 배트맨을 기반으로 한 [다크 나이트] 신화의 전설을 마무리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 이후, 배트맨이 또 다른 악당 베인과 최후의 전투를 펼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연출해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앤 해서웨이와 놀란 감독은 이후 [인터스텔라]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는 셀리나 카일(캣우먼) 역할을 맡아 치명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셀리나 카일은 남성을 농락하는 범죄자이자 배트맨과 악당 사이에서 미묘하게 신경전을 벌이며 공조하는 인물로, 적은 비중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는 역할이다. 고양이 귀를 달고 대담하게 바이크를 운전하는 모습은 원작의 캣우먼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레미제라블(2012) / 팡틴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조금씩 다른 순서로 등장하는 넘버들과 장엄하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인상적이다.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다시는 모일 수 없는 할리우드 드림 캐스팅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앤 해서웨이는 먼저 오디션 참여 의사를 밝히는 열정을 보여줬고,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을 연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극중에서 판틴은 장발장이 만난 운명의 여인으로, 장발장 못지 않게 극적이고 내밀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앤 해서웨이는 역할을 위해 삭발을 감행했고, 노래와 연기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며 오스카 트로피를 비롯해 다수의 시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마겟돈 타임(2022) / 에스더 역

이미지: 유니버설 픽쳐스

한 시절의 끝에서, 자신의 세상을 지키고 싶었던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아마겟돈 타임]. 자유로운 아티스트를 꿈꾸는 폴이 답답한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펼쳐낸 내밀한 자화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이 동등하게 묻어 있는 1980년대의 미국을 진실하게 묘사했다. 앤 해서웨이, 제레미 스트롱, 안소니 홉킨스 같은 노련한 배우들과 더불어, 뱅크스 레페타와 제일린 웹이라는 보석 같은 소년 배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제임스 그레이는 엄마 에스더 역할로 앤 해서웨이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전했다. 에스더는 어린 아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의 야망도 지키고 싶은 인물로, 결단력과 연약함, 슬픔과 사랑을 모두 가진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대의 초상을 담은 묵직한 시대극이자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담은 가족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