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스튜디오 지니

누구나 한 번쯤 잠시 쉬어가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설현과 임시완의 만남으로 시선을 모은 ENA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인생 파업을 선언한 여름의 이야기를 통해 바쁜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휴식 같은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주인공 여름은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20대 청춘이다. 그는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여름의 상사는 부하직원의 순진한 열정을 뻔뻔하게 이용하고, 남자 친구는 편이 돼주기는커녕 여름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더니 이별을 고한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여름의 편이었을 엄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생기를 잃은 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잃어가던 여름은 마침내 죽을힘을 다해 버텨왔던 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기로 한다. 서울생활을 모두 정리한 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도시 생활에 지친 청춘이 그와 전혀 다른 시골마을로 간다는 점에서 여름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린다. 영화에서 혜원은 시험에 떨어지고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가 추억이 깃든 옛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스스로를 찾아간다. 반면 여름이 머물기로 한 안곡마을은 풍경은 평화롭지만 혜원처럼 아는 친구나 이웃이 없는 낯선 마을이다. 드라마는 여름이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변화하는 모습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여름의 시골 생활은 혜원처럼 마냥 편안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여름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입견을 갖고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정서를 기대한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이미지: 스튜디오 지니

안곡마을의 도서관 사서 대범은 이 작품에 기대하는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무작정 안곡마을에 도착한 여름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선의를 베풀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 늘 주변을 보살피는 대범의 따스한 마음이 여름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대범에게도 여름 못지않은 사연이 있다. 천재라 불리던 그는 모종의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고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드라마는 각자의 삶에서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의 관계를 좁히며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넬 것이다. 

대본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선택했다는 설현은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을 이끈다. 반쯤 얼이 빠져있는 번아웃 상태의 여름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마주했을 법한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인생 파업을 선언하고 실현해가는 모습에선 청춘의 풋풋함과 용기가 느껴진다. 임시완은 특유의 해사한 미소로 드라마에 청량감을 부여한다. 묘하게 알쏭달쏭하면서도 섬세하고 선량한 대범과 배우가 가진 비주얼과 잘 어우러진다. 

선입견과 편견, 텃세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의 일부 모습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드라마는 대체로 일상에 염증을 느낀 시청자들이 힐링할 만한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여름이 도서관에서 알게 된 고등학생 김봄(신은수)과 점점 가까워지고 자매애를 나누는 모습이 흐뭇하다. 

다만 작품에서 음주를 묘사하는 방식이 염려스럽다. 안곡마을에 정착한 여름은 두 차례 기억이 끊길 만큼 술을 마시는데, 이를 여름이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음을 열어가는 계기이자 재미있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다루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에서 몸도 기억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마셔도 대범 같은 착한 사람이 도와주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무척 꺼림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랫동안 버려진 건물에 저렴하게 입주한 여름이 자물쇠 없이 지냈다는 설정도 의아하다. 사소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장르물이 강한 요즘 트렌드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굵직하고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보다는 여름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극을 채운다. 그 이야기가 답답하든 편안하든 우리의 삶과 멀지 않고, 그래서 여름의 변화와 회복을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