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 유명 시리즈에서도 굵직한 연기 선보이며 매번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공개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랄프 파인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와 [007] 시리즈에서 M으로 알려진 ‘말로리’ 역을 소화하여 시리즈의 빼놓을 수 없는 존재, 더 나아가 [킹스맨]의 시초였던 공작을 연기한 그 배우이다.

이처럼 넓은 연기 스펙트럼 자랑하는 랄프 파인즈가 외딴섬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영화 [더 메뉴]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랄프 파인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자신만의 메뉴를 선보이는 셰프 ‘슬로윅’으로 변신, 이전에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또 다른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그래서 오늘은 1992년에 영화 배우로 데뷔, 약 30년이라는 배우 생활 동안 선보여온 랄프 파인즈의 다양한 캐릭터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자신의 비주얼을 살린 로맨스는 물론, 최근에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고 있는 그의 매력을 주목해보자.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 라슬로 알마시 역

이미지: (주)영화사 오원

[쉰들러 리스트](1993)에서 잔혹한 나치 장교 ‘아몬 괴트’를 연기하며 잔혹한 인물을 보여주었던 랄프 파인즈는 곧바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그의 차기작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전작과 완전 다른 모습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무렵, 극심한 화상을 입고 나라와 신분, 이름까지 잃은 환자 ‘알마시’가 ‘잉글리쉬 페이션트’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야전병원을 전전하다 간호사 ‘한나’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랄프 파인즈는 극중에서 헝가리인 탐험가 ‘라슬로 알마시’ 역을 맡았다. 전쟁으로 갈등이 최고조로 오른 시기의 탐험가의 서사가 얼마나 이목을 끌까 싶지만, 랄프 파인즈는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 절제하면서도 그 감정에 깊이 빠지고, 상대를 위해 목숨까지도 걸었던 주인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그의 지독한 사연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당시 미국 아카데미 12개 부문 후보로 올라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을 비롯한 9개 부문을 수상했다. 안타깝게도 남우주연상 후보였던 랄프 파인즈는 수상에 실패, 아직까지도 아카데미 시상식과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

킬러들의 도시(2008) – 해리 워터스 역

이미지: 데이지엔터테인먼트 , 플래니스

[레드 드래곤]에서는 연쇄살인마, [해리 포터]에서는 ‘볼드모트’ 등 신사적인 그의 모습과 대비되는 빌런 역할도 잘 소화한 랄프 파인즈는 [킬러들의 도시]를 통해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킬러들의 보스로 등장해, 차가운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킬러들의 도시]는 암살 작전 이후 도망친 킬러 ‘레이’와 ‘켄’을 중심으로, 그들의 보스인 ‘해리’가 ‘켄’에게 킬러들의 규칙을 어겼던 ‘레이’를 죽이라 명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랄프 파인즈는 [킬러들의 도시]에서 킬러들의 규칙에 의해 그들을 관리하는 보스 ‘해리 워터스’ 역을 맡았다. 암살 작전을 실행할 때,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아무렇지 않게 내릴 정도로 냉정한 원칙주의자 캐릭터다. 주인공 ‘레이’와 ‘켄’에 비해 비교 잠시 등장하지만, 랄프 파인즈는 ‘해리’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의 분위기를 시종일관 팽팽하게 이끌었다.

허트 로커(2009) – 콘트랙터 팀 리더

이미지: (주)NEW , (주)까멜리아이엔티

제레미 레너와 안소니 마키의 케미가 빛난 [허트 로커]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폭발물 해체반 EOD와 그 대원들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허트 로커]에서 랄프 파인즈는 PMC의 지휘관, ‘콘트랙터 팀 리더’ 역을 맡았다. 짧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캐릭터이지만, 그 순간에도 수많은 고뇌를 온몸으로 표현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EOD 대원들에게 적으로 오해를 받는 상황을 비롯, 위험천만한 순간의 중심에 놓인 인물로 결이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해당 작품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게 만들어줬다. 작품상 포함 6개의 상을 수상하며 전쟁영화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구스타브 역

이미지: (주)피터팬픽쳐스

랄프 파인즈의 색다른 직업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영화를 꼽자면 단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마담 D.’가 의문스러운 살인을 당한 상황,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이자 그의 연인 ‘M. 구스타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중 랄프 파인즈는 호텔 지배인이자, ‘마담 D.’를 죽인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M. 구스타브’ 역을 맡았다. 마담 D.가 그에게 ‘사과를 든 소년’의 그림을 남기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그의 아들을 포함한 가족, 일가친척 모두가 구스타브를 범인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랄프 파인즈는 의도치 않은 살해 용의자 신분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갇히게 되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는 인물을 엉뚱한 행동으로 그려내 극에 재미를 보탠다. 호텔 보이 ‘제로’ 토니 레볼로리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소소한 웃음을 보여주며 작품의 흥겨움을 자아낸다. 랄프 파인즈의 이 같은 열연에 힘입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국내 8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리 많지 않은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입소문을 불러 일으키며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뒀다. 아트버스터라는 신조어도 이 작품을 통해 탄생했을 정도. 여러모로 국내에서 랄프 파인즈의 존재를 가장 부각시킨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오피셜 시크릿(2019) – 벤 에머슨 역

이미지: (주)팬 엔터테인먼트

실화를 다뤄낸 영화에서 배우의 연기력은 더욱 그 진심을 전하는 창으로 쓰인다. 랄프 파인즈는 [오피셜 시크릿]에 출연, 오랜만에 실화 바탕의 이야기에서 의미 있는 연기를 펼쳤다. [오피셜 시크릿]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 세계를 뒤흔들 국가 일급기밀을 유출한 영국 정보부 요원 ‘캐서린 건’과 그가 폭로한 내용을 대서특필한 기자 ‘마틴 브라이트’, 그를 변호하는 인권 변호단의 변호사 ‘벤 에머슨’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랄프 파인즈는 [오피셜 시크릿]에서 인권 변호사 ‘벤 에머슨’ 역을 맡았다. 영국의 공무상 비밀 엄수법인 ‘오피셜 시크릿’을 위반한 인물의 변호를 맡게 되는 인물로, 극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애쓰면서 관객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국가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변호를 시작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행동이 무모하지만, 그 만큼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변호사의 무게감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랄프 파인즈의 안정된 연기력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