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이미지: TIME

22세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후 의문사하였다. 정부는 그를 기리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공개 처형한 후 시신을 공공장소에 공개했다. 혐의는 ‘신과의 전쟁’이다. SNS에 반정부 지지 게시글을 올린 배우는 사회 혼란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체포됐고, 국가의 이름을 드높인 스포츠 선수는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집을 철거당했으며, 히잡을 벗고 국제 경기에 참가한 체스 선수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나라를 떠나기로 했다.

멀지 않은 나라 이란으로부터 들려오는 뉴스들이며, 이 모든 사건은 100일 만에 벌어졌다. 지금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끊임없는 인명 피해 속에서도 정부는 대화가 아닌 강경 진압을 택했다. 온갖 무자비한 방법으로 공포감을 조성했지만, 이는 결국 시위 규모 확대로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우려하는 가운데, 이란은 결국 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선택한 듯하다.

놀랍게도, 이 대규모 시위를 이끈 이들은 10-2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그들은 SNS를 통해 이란 바깥세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현재 자신들의 나약한 인권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이들에게 내려진 혐의가 ‘신과의 전쟁’이라니, 어쩐지 기묘하다.

사실 이란은 40년 전, 이슬람 최초로 히잡 착용을 법으로 금지했던 국가였다. 당시 이란은 서구 문물을 도입해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만큼, 그야말로 중동의 패션리더였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갖게 된 이후, 여성들이 9살부터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만 했다. 앞서 언급한 ‘도덕 경찰’은 이슬람 풍속에 위반되는 행위를 단속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한다.

이렇게 이례적인 시위가 한창인 2022년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반정부 시위에 나선 여성들을 ‘올해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의 깊은 의미를 알고 나면, 목숨을 바쳐 반란을 일으킨 그들이 분명 영웅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미지: 목영이엔엠 , (주)다자인소프트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칠흑같이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미인의 필수 조건이던 1920~1930년대 경성, 서구적 의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신여성 ‘모던 걸’들에게 단발머리는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고, 근대적 자아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또한, 여성은 신체를 가려야 한다고 말하는 기성체제를 향한 도전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 여성들의 진정한 해방과 연대의 목소리를 담은 페미니즘 다큐멘터리 [머리카락]과 [우리는 매일매일]이 세상에 던져졌다. 이미해 감독의 [머리카락]은 여성들의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탈코르셋’이란 긴 머리, 장신구, 섹스 어필의 복장, 화장, 하이힐 등 사회가 주입한 여성 인권 억압의 모든 상징들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머리카락] 속 주인공들은 여느 여자아이처럼 바비 인형을 좋아하고, 수능 당일 아침까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말고, 잘록한 허리를 위해 코르셋을 착용하고 다녔던 과거를 고백한다.

이미지: 목영이엔엠 , (주)다자인소프트

하지만 곧 그 모든 ‘주체적 꾸밈’들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물으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현실을 토로한다. 자신의 민낯을 제대로 마주한 주인공들은 거울 속 내 모습을 부정하기도 했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짧은 머리가 자신에게마저 낯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치 규격에서 벗어난 제품을 바라보듯 하는 주변의 시선이 이들을 더욱 괴롭힌다.

혐오의 시선과 싸우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결국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경성의 모던 걸들이 겹쳐 보인다.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으면 혐오가 발생하지 않는다는데, 이 구조의 변혁을 거부하며 위기의식을 느끼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21세기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그들은 정말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걸까. 우리는 종교가 권력을 갖는 국가도 아닌데, 고작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가 왜 그렇게 놀랄 일이었을까. 이제야 제 민낯을 마주한 여성들은 세상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다.

이미지: 인디스토리

강유가람 감독의 [우리는 매일매일]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활동한 영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동아리의 가부장적 문화에 질려서, 난동을 피운 남대생들에 맞서 싸우면서, 여성주의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한국 성폭력 상담소 자원활동가를 해오면서 등등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가장 뜨거웠던 20대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들은 매일매일 연대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에 페미니즘이 2010년에 들어온 줄 알고 있는 어린 세대에게, 20년 넘게 여성운동을 이어온 선배로서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영화 속에서, 여대 축제에 와서 난동을 피운 남대생은 ‘선배들의 관습을 따르는 일에 죄의식은 없어요’라는 말을 남긴다. 주체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세대가 어떻게 인간성을 잃어가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책임을 신에게 돌리는 ‘신과의 전쟁’이라는 말은 얼마나 비겁한가. 강한 선배든, 대단한 신이든, 안전한 장치 뒤에 숨어 권력을 지키려는 구조는 사라져야 한다.

이미지: 인디스토리

두 편의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페미니즘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의 인생은 더 이상 같을 수 없다고. ‘제2의 인생’이라고 칭할 만큼 새로운 일상에 스스로가 놀란다. 아마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자각하기까지 일상 속 억압을 모르고, 혹은 모른 척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처럼 인권을 위해 억세게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열혈 투사와 같은 급진적인 여성들이 아니다. 평생 수많은 모순을 피부로 경험하는 평범한 여성들이며, 어느 순간 자신의 자아를 갈망하기 시작하는 평범한 소녀들이다. 이란의 젊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베를린 장벽과도 같은 히잡과 터번을 벗어던지고, 하루빨리 평화와 자유를 되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