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모델 출신 배우의 강점이라면, 말보다 먼저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점일 것이다. 출중한 신장과 강렬한 눈빛, 유니크한 매력을 가진 주지훈은 그 강점을 백분 활용하는 배우이다. 모델계의 공무원이었던 그는 데뷔작 [궁] 이후 단숨에 하이틴 스타로 등극했고, 점차 배우로서 영역을 넓혀가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게 되었다. 자신만의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내뿜는 모습을 보면 ‘옴므파탈의 정석’이라는 수식어도 아깝지 않다. 최근 범죄 액션 오락영화 [젠틀맨]으로 통쾌한 재미와 함께 스크린에 돌아온 주지훈, 어느덧 데뷔 20년 차가 된 그의 다양한 출연작들을 살펴보자.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 김진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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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넷이 꾸려가는 별난 케이크 숍 ‘앤티크’의 일상을 그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오감도], [내 아내의 모든 것],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허스토리]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작품으로, 주지훈과는 이 작품 이후 [결혼전야], [간신]까지 호흡을 맞췄다. 2000년대 중반, 한국 TV 드라마는 [궁], [풀하우스], [쩐의 전쟁], [식객]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화제를 낳았고,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역시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스크린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주지훈은 엉뚱한 재벌 2세 사장 진혁 역을 맡아 베이킹, 불어, 복싱, 댄스까지 소화했다. 주인공의 상처를 둘러싼 비밀과 치유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으며, 속사정 있는 네 남자의 달콤한 브로맨스가 관전 포인트이다.

간신(2015) / 임숭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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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뒤흔든 간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사극 영화 [간신]. 영화의 소재가 되는 ‘채홍’은 연산군 11년, 장악원 제조로 있던 임숭재와 그의 아버지 임사홍을 채홍사로 임명하여, 조선 팔도 각지의 미녀를 색출해 궁으로 들이도록 명한 사건이다. 주지훈은 왕을 홀리고 시대를 능멸한 역사상 최악의 충신 임숭재 역할을 맡아, 예술에 미치고 쾌락에 빠진 왕과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인다. 그는 검술과 검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액션 연기까지 선보였으며, 영화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를 선사하며 몰입감을 더한다.

아수라(2016) / 문선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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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악인들의 전쟁을 그린 느와르 영화 [아수라]. 뒷골목의 음습함이 도처에 배어 나오는 악의 왕국을 배경으로, 물고 물리는 악인들의 지옥도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비트], [무사], [태양은 없다], [감기]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작품으로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이 한데 모여 폭발적인 시너지를 이뤄냈다. 주지훈이 연기한 형사 문선모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선에서 악으로 변해가는 인물로, ‘아수라’답게 인간의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진정한 악인은 도처에 널려 있으며, 욕망을 가진 누구라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아수라장’에서 절박하게 전한다.

신과함께-죄와 벌(2017) & 신과함께-인과 연 (2018) / 해원맥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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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천 년의 비밀을 그린 한국형 판타지 [신과함께] 시리즈.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을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등을 연출한 김용화 감독이 영화화했다. 주지훈이 연기한 해원맥은 망자와 저승 삼차사의 경호를 담당하는 일직차사 역할로, 날카롭고 차가운 외모와 달리 따뜻한 속내를 가진 인물이다. 츤데라라고 할까? 동료들의 행동에 못 마땅해 하면서도, 위기에 처한 이들을 화려한 무공으로 도와주는 모습은 그의 매력이다. 저승 삼차사를 비롯해 원귀와 귀인, 성주신, 염라대왕 등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웹툰에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비범한 세계관을 비롯해 엄청난 제작비, CG/VFX 연출, 초호화 캐스팅이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낯선 저승 공간 구현부터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의상 연출, 배우들의 현란한 액션은 눈을 즐겁게 했고 이는 엄청난 흥행으로 이어졌다. 1편과 2편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형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신화를 알렸다.

암수살인(2018) / 강태오 역

이미지: (주)쇼박스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범죄 영화 [암수살인]. 부산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범죄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주지훈이 연기한 살인범 강태오는 15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추가 살인을 자백하고, 그 과정에서 형사 김형민(김윤석)에게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뒤섞어 말하며 수사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두 배우의 복잡한 심리전이 밀도 높게 전개되며, 범죄 수사 장르의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주지훈은 속을 알 수 없는 살인범 강태오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춘사영화제, 황금촬영상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젠틀맨(2022) / 지현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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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완벽하게, 수사는 젠틀하게 펼치는 젠틀맨들의 사투를 그린 고품격 범죄 오락 영화 [젠틀맨]. 2022년 12월 개봉한 wavve 오리지널 영화이다. [킹덤] 시리즈, [하이애나], [지리산]으로 드라마 활동을 펼치던 주지훈이 [암수살인]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이다. 그가 연기한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는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인물이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부터 주지훈을 주인공으로 생각했다고 밝혔고, 주지훈은 미스터리하지만 유쾌하고 통통 튀는 캐릭터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다양한 작품에서 위압감 넘치는 빌런을 연기해온 박성웅은 새로운 빌런을 탄생시켰고, 믿고 보는 배우로 도약 중인 최성은은 오랜 내공을 갖춘 선배들 사이에서도 빛나는 존재감을 뽐낸다. 세 배우의 신선한 조합이 극을 풍성하게 채우며 재미를 높인다.

[젠틀맨]으로 2022년을 마무리한 주지훈의 활약은 2023년에도 계속될 듯하다. 붕괴 직전 공항대교에 고립된 사람들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 [사일런스], 1986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외교관 납치 사건의 실화를 그린 영화 [피랍], 인간의 식탁에서 피 흘리는 고기가 사라진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그린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지배종]을 통해 다양한 매력을 건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