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곰솔이

[교섭] 이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여성 영화 감독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1980년대. 영화에 대한 꿈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임순례 감독은 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994년 단편영화 [우중산책]을 연출해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영화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세 친구](1996)로 장편 영화를 데뷔한 임순례 감독은 이후 차곡차곡 자신만의 작품을 쌓으며 어느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다채로운 소재,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다뤄온 그가 이번에는 황정민, 현빈과 함께한 [교섭]으로 돌아왔다. 임순례 감독은 일곱 번째 장편 영화를 선보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연출해 왔을까? 그의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임순례 감독의 작품 인생을 되돌아본다.

세 친구(1996)

이미지: 오스카픽쳐스

시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영화는 많은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다. 임순례 감독의 데뷔작 [세 친구]도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세 친구]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세 명의 20대 청년들이 입영 통지서를 받고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과정에서 겪는 청춘들의 자화상을 담은 영화다.

작품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그렇지만 아직 무언가를 해내진 못한 세 청춘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표현했다. 배우 김현성의 데뷔작이기도 한 [세 친구]는 임순례 감독이 연출부터 제작, 기획과 각본까지 맡으며, 영화인으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연출 덕분에 당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을 수상하며 다음 연출을 기대하게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미지: 명필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수많은 이들에게 인생 영화라 손꼽히며, 지금까지도 임순례 감독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학창시절 최고의 록 밴드를 꿈꿨던 청년들이 중년이 되어 고달픈 현실 속에서 밤무대 밴드로 활동하며 겪는 인생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임순례 감독의 연출력은 물론, 배우의 열연도 좋은 시너지를 발휘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배우 황정민, 류승범, 박해일이 이 작품에 출연해, 지금과는 다른 풋풋한 모습으로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더한다. 전작 [세 친구]에서도 다뤘던 아웃사이더들의 삶에 집중해 묘한 씁쓸함과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비해 흥행에는 아쉽게 되었지만, 당시 백상예술대상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이 영화의 진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이미지: 명필름

임순례 감독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함께 제작했던 명필름과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새로운 결의 영화를 선보였다. 대한민국의 핸드볼 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그리며 401만 명의 관객을 모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AP통신이 선정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10대 명승부전에도 이름을 올렸던 핸드볼 경기를 배경으로, 세계 최강 덴마크에 맞서며 명승부를 펼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 등 당시 30대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멋진 앙상블을 펼쳤다. 그 결과 2008년 설 연휴 시즌을 책임지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임순례 감독은 그동안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고도 흥행 성적이 좋지 못했는데 그 아쉬움을 이 작품 하나로 다 날렸다. 흥행뿐 아니라,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임순례 감독 자신의 필모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남쪽으로 튀어(2012)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우생순]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임순례 감독은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영화 [남쪽으로 튀어]로 다시 관객과 만났다. ‘배우지도 가지지도 말자’라는 말을 가훈으로 삼아,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던 남자가 고향으로 향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을 반영해 영화만의 매력을 건넸다.

특히 이 작품은 임순례 감독의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라 더 시선이 갔다. 그의 전까지 작품 속 주인공들은 약자 혹은 아웃사이더로서 사회와 편견에 치이는 모습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시청료 때문에 전기요금을 내지 않으며, 동의하지 않은 국민연금 납부도 거부하는 등 당당하고 독특한 모습으로 또 다른 재미를 자아냈다.

제보자(2014)

이미지: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임순례 감독은 다시 한번 실화를 소재로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이전 [우생순]과 다르게 감동과 박수보다는 고발과 성찰을 더 강조한 작품이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던 황우석 사건을 모티브로 둔 [제보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보자]는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는 어느 박사의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제보를 받게 된 방송 PD가 해당 사건에 뛰어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아역 배우로 함께했던 박해일이 주연을 맡아, 임순례 감독과 13년 만에 함께 호흡을 맞췄다.

[제보자]는 MBC 『PD수첩』 프로듀서 한학수 PD의 책을 바탕으로 제작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실화의 무게감보다, 집요하게 취재를 이어가는 언론인의 모습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사건을 추적하는 PD의 발자취를 치열하게 그린다. 덕분에 진실 공방을 펼치는 PD와 박사의 공방이 흥미롭고,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되묻는다.

리틀 포레스트(2018)

이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임순례 감독은 전하는 힐링 영화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소개할 [리틀 포레스트]가 그 답이 아닐까 싶다.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고단한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주인공이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오랜 친구들과 다시 만나 직접 만든 음식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지친 청춘을 위로할 김태리, 류준열의 산뜻한 에너지는 물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호흡을 맞췄던 문소리까지 함께하며 이야기의 맛을 더한다. 특히 소확행이 유행이던 시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입맛 당기는 음식과 사계절의 풍경이 작품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먼저 본 관객들의 좋은 입소문이 계속되면서 전국 관객 150만을 돌파, 손익분기점 (80만 추정)을 넘어섰다. 관객은 물론 제작진들에게도 힐링 영화가 된 듯하다. 참고로 영화의 배경이 된 군위권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