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개봉 예정인 [유령]은 중국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미 현지에서는 [바람의 소리]로 만들어져 공개되기도 했다. 1933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인 ‘유령’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과 그의 활약을 담은 이야기다. [독전]을 리메이크해 한국판만의 재미를 이끌어낸 이해영 감독은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로컬의 힘을 보여줄 예정이다.

[유령]은 시작부터 눈길을 끈다. 정체불명의 유령이 보낸 지령과 암호를 파헤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려내어 긴박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21세기 스마트 시대에 만나는 아날로그 스파이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사람의 감정이 느껴지는 손글씨와 암호해독서, 각종 문구들이 고풍스럽게 스크린에 수놓는다.

이미지: CJ ENM

‘유령은 이 안에 있다’라는 슬로건답게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나와 캐릭터의 그럴 듯한 알리바이를 설정한다. 출산 후 이 작품으로 컴백한 이하늬는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가며, 설경구는 아군인지, 적인지 구분 못할 연기로 미스터리를 더한다. 박소담은 화려한 비주얼 사이 직설적이고 터프한 면모로 캐릭터의 매력을 전한다. 무거운 공기를 잠시 누그러뜨리는 서현우의 깨알 같은 활약도 좋다. 이 모든 것을 감시하는 박해수는 웃음 뒤에 숨겨진 광기가 다가올 폭풍을 예고한다.

영화는 이들을 특정 공간에 가둬 놓아 서로를 견제하고 의심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누가 진짜 유령일까’ 알고 싶은 관객의 심리게임도 팽팽하게 펼쳐진다. 스포일러 관계상 유령의 정체를 말할 수 없지만, 그를 찾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단서와 사건들이 마치 추리 소설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의외로 유령의 정체는 시작하자마자 밝혀지지만, 작품이 건네는 게임은 단순하지 않다. 중반부에는 꽤 놀라운 반전도 있으니 모두를 의심하고,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이미지: CJ ENM

한 차례 스파이 게임이 끝나면 영화는 총구에 불을 붙인다. 시원시원한 액션이 펼쳐지며, 주인공의 아슬아슬했던 고군분투가 통쾌함으로 전환된다. 사실 이 대목은 원작 소설과 영화 [바람의 소리]에는 없는, 한국판만의 오리지널이다. 이해영 감독은 전작 [독전]처럼 스타일리쉬한 카메라로 독특한 액션을 빚어낸다. 다양한 주변 배경을 활용해 마치 연극 같은 느낌의 퍼포먼스로 작품의 재미를 높인다. 다만 중반부까지 잘 진행되었던 추리극이 갑자기 액션으로 전환되면서 이야기의 간격이 꽤 벌어진다. 이해영 감독은 [유령] 간담회때 “원작의 목적인 ‘유령이 누구인가’라는 플롯은 나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유령의 시선에서 극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하며 만들었다’고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액션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캐릭터의 운명은 한치 앞도 모르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탁월하다. 특히 이하늬와 박소담의 활약상이 기대 이상이다. [극한직업] [원 더 우먼] 등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던 이하늬는 시종일관 어둡고 진지한 모습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설경구와 격투까지 벌이는 액션을 소화하며 볼 거리도 책임진다. 박소담 역시 초반의 시크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 뒤에 무언가를 숨긴 듯한 연기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살아남아라”는 말을 많이 외친다.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 하지만 [유령]은 오히려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신념과 용기의 또 다른 의미를 건넨다. 몇몇 장면에서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다소 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오락영화의 재미 속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