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아니죠, 최고란 뜻입니다

The Greatest of All Time. 줄여서 GOAT. 이 명칭은 역사상 최고 선수에게 주어진다. 천재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선수에게 주어지므로 이 타이틀은 자주 논쟁 거리가 되기도 한다. 마니아 사이에서는 양보 없는 토론 주제인데, 누군가 특정 선수를 GOAT이라 지칭하면 곧장 반박하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축구처럼 전 세계 인재가 모이는 종목은 GOAT를 둘러싼 논쟁이 더 거세다. 그럼에도 모두가 인정하는 GOAT가 있으니, 바로 에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다. 처음 들어보는 것 같지만, 우리에겐 “펠레”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그라운드의 전설이다.

축구 영웅 펠레의 삶 속으로

이미지: 넷플릭스

지난 12월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가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현역 선수도, 감독도 아니지만 펠레는 이번 브라질 대표팀의 구심점으로 등극했다. 브라질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면서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 펠레. 어떻게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됐을까? 그 답을 알고 싶다면 아래 다큐멘터리를 확인해 보자. 펠레의 일대기를 유년 시절부터 차근히 짚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펠레]가 궁금증을 해소해 줄 것이다. 

시작은1970년 월드컵 개막 장면이다. 곧이어 펠레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모습, 그리고 기량 저하로 뭇매를 맞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영광과 수난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훅 끌어올린 후 본격적으로 관객을 펠레의 삶으로 초대한다. 

이것은 스포츠 다큐멘터리인가? 문화 다큐멘터리인가?

이미지: 넷플릭스

스포츠 다큐멘터리에 흔하게 나타나는 요소로 당사자의 심리, 문화적 배경,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꼽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스타 선수라면 세 번째 요소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선수 시절 인터뷰나 활약했던 경기 영상, 라이벌과의 신경전. 흔히 스포츠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펠레]의 경우 이러한 요소들이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이 맞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펠레]는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맞다. 그러나 종전의 의문이 든 것은 문화 다큐멘터리의 특성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커리어 통산 1279 골을 넣은 펠레. 1958 월드컵 준결승전에 출전했을 당시 그는 17살이었다. 브라질이 프랑스 상대로 5골을 넣으며 승리했고 그중 세 골이 펠레의 발에서 터졌다. 영화가 이 경기로 서두를 여는 건 펠레의 재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당시 브라질과도 묶여 더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날의 승리는 스타의 탄생을 알리면서 동시에 나라가 진보할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이처럼 펠레의 성취를 선수 개인에게 국한하지 않고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보는 패턴은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 뒤 브라질과 스웨덴의 월드컵 결승전으로 이어진다. 캐스터의 엄숙한 목소리와 함께 흑백의 중계 영상으로 전환된다. 스웨덴이 선취득점을 가져갔지만, 이내 펠레가 가볍게 공을 툭 차서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동점골을 넣었다. 카메라는 희비가 엇갈린 관중들을 비춘 후 다시 펠레를 담는다. 이날 펠레는 추가 헤딩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

이제 천재 축구선수는 브라질의 보물로 거듭났다. 그의 이름은 희망의 동의어가 되었고 그의 활약은 기쁨을, 부상 소식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펠레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보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서 펠레는 얼마나 뛰어난가? 그러나 벤 니컬러스 감독은 ‘메시와 동시대에 뛰었다면?’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조세 무리뉴, 개리 리네커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펠레를 저울에 올려놓는 순간 영화가 식상해지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영화를 채우는 사람은 전적으로 펠레이며, 그 외 선수들은 미미한 존재감에 그친다.

승리의 고양감이 가라앉고 시위대와 총을 든 군인이 화면을 채운다. 시간이 흘러 브라질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정세는 급변했지만, 축구는 그대로였다. 펠레는 여전히 축구의 황제로 군림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 1968년, 뒤숭숭한 국가 분위기 속에 모두의 눈이 1970 월드컵으로 향한다.

그라운드 밖의 펠레

이미지: 넷플릭스

영화는 펠레의 성장 과정, 불안했던 결혼 생활,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를 탐구하며 경기장 밖의 인생을 조명한다. 일례로 인터뷰이로 참가한 브라질 대표 선수 출신 파울루 세자르 리마는 펠레를 ‘(권력에) 순종적인 흑인’이라 표현하며 비판했다. 또 다른 인터뷰이인 주카 크포리는 펠레를 무함마드 알리와 비교했다. 무함마드 알리는 베트남 전쟁 때 징집을 거부하고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펠레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단, 크포리는 당시 브라질 정권의 탄압을 언급하며 펠레의 상황을 참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펠레의 인생을 브라질의 역사와 엮어 탐구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해관계자들 간에도 우호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간이 공존한다. 다양한 정치, 사회적 관점을 제시하는 가운데 한 가지가 빠져 의문스럽게 느껴졌다. 바로 브라질 사회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인종차별 문제다. 펠레가 활동한 1960~70년대 브라질은 인종차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영화의 자료 화면만 보아도 관중석과 기자단에 백인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펠레의 성공과 인기는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에게 자긍심을 주며 더 큰 의미를 남겼다. 이는 영화가 강조하는 문화적 배경과도 연결되므로, 언급되지 않은 게 의아할 뿐이다.

긴 호흡으로 바라본 펠레의 삶

이미지: 넷플릭스

많은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선수의 리즈 시절에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펠레]는 색다르다. 찰나가 아닌 전체를 담는다. 영화는 1950년에서 시작하여 1970년에 마침표를 찍는다. 15세 흑인 소년이 정상에 오르고 나아가 브라질과 축구의 상징이 되는 여정을 108분에 담아냈다. 펠레 본인과 주변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탄탄한 자료 조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간 여행을 완성했다. 펠레의 전성기를 몰아서 보고 싶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펠레를 다면적으로 알기에는 유용하다. 무엇보다 이제 펠레는 고인이 되어 그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당사자가 직접 답변을 건네는 [펠레]는 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