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늘 이맘때 재미와 감동 그리고 눈물까지 자아내는 픽사의 신작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 감독, 시리즈가 아닌 제작사 때문에 기대하는 것도 내 영화 취향에 거의 유일하다. 픽사는 해마다 독창적인 소재로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스토리 텔링과 애니메이션 기술 발전의 레퍼런스를 항상 보여준다. 몇몇 작품이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일정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 이들의 창작력을 보고 있으면 “픽사 구내식당에는 대체 어떤 메뉴가 나오길래”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업] 20자 평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2007년에 나왔고,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도 시청 가능한 [픽사 스토리]는 이 같은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내줄 듯하다. [물론 이 작품을 보고도 픽사 구내식당의 메뉴는 알 수 없지만….] CG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연 픽사 스튜디오의 창립부터 성장 과정을 90분 영상으로 담아낸다. 해당 브랜드 팬들은 물론, 애니메이션계의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모티브를 건넬 듯하다. 물론 제작 연도의 한계 때문에 2008년 [월-E] 이후 픽사의 업적은 만날 수 없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그들의 청사진을 확인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에 있는 재미와 감동을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달려가는 픽사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나보자.

애니는 거들 뿐! 진짜는 PC 제작사…실화냐? 우리가 몰랐던 픽사의 비하인드

이미지: 디즈니

[픽사 스토리]는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통적인 2D가 아닌 CG 애니의 수요가 높아졌고, 이를 파악한 세 사람, 스타브 잡스와 애드 캣멀 그리고 존 레스터가 손을 잡고 큰 목표를 꿈꾼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초창기 픽사의 목표는 영화 스튜디오가 아닌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작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CG 애니메이션은 작품보다는 제품 홍보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존 라세터가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 주니어]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까지 올라가면서 픽사의 이름이 많이 알려진다. 그럼에도 회사의 재정은 갈수록 나아지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자신의 사비를 들여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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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존 라세터는 [틴 토이]라는 새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며 회사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틴 토이]에서 CG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본 월트 디즈니가 함께 장편을 만들자고 그들에게 제안한 것. 물론 스타트업 기업인 픽사와 거대 공룡 영화사인 디즈니와 관계는 공평하지는 못했다. 여러모로 디즈니가 유리한 쪽으로 계약을 제시했지만, 픽사는 이것을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두 회사의 공동 작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애니메이션 역사 아니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토이 스토리]의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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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스토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픽사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지만, 제작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디즈니 임원진의 여러 불합리한 수정과 간섭 때문에 초기 스토리가 엉망이었다. 특히 주인공 우디의 성격이 너무 망가져서, 목소리를 맡은 톰 행크스가 싫어했을 정도. 이에 위기를 느낀 픽사 측은 다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구축했고 디즈니 임원진을 설득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 결과 1995년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작품이 되었고, 픽사 역시 더 이상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작사가 아닌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발전한다. 영화는 이후 픽사가 만든 [토이 스토리 2],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같은 대표작들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며 그들의 성공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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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스토리] 자체가 16년 전 작품인만큼 지금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건강한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소울]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류 스탠튼, [인크레더블] 시리즈의 브래드 버드 등 이제는 픽사의 핵심 브레인이 된 이들의 패기 넘치는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다. [피트 닥터의 데뷔작 [몬스터 주식회사]가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우자 다음해 차기작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류 스탠튼에게 부담 갖지 말라고 말하는 당시 픽사 수장 존 라세터의 모습이 꽤 웃김] [인사이드 아웃]의 ‘트리플덴트 껌’이 픽사 초창기 시절 자신들이 만들었던 광고(트라이덴트 껌)의 오마주인 것도 재미를 더한다. 지금과는 완전 달랐던 [토이 스토리] 우디와 버즈의 초기 디자인과 존 라세터가 가족과 여행을 하면서 [카]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비하인드 등 픽사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깨알 같은 선물들이 가득하다.

픽사의 무한 도전은 지금도 진행 ing

이미지: 디즈니

지금에서야 자신들의 성공담을 책으로 내고 이렇게 다큐도 만들지만, 초창기 픽사는 존폐 위기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스티븐 잡스가 10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렇다 할 이익도 없이 100만 달러를 날려버렸다고 한다. 컴퓨터 제품은 안 팔리고, 그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은 단편이라 극장 및 부가 수익도 전무했다. 그럼에도 창작의 꿈과 CG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믿은 픽사 크리에이터들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그 결과 이제는 작품 이름보다 더 먼저 기억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픽사 스토리] 후반부 디즈니, 드림웍스 등 규모가 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2D를 접고 CG 애니로 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픽사 제작진들은 이 같은 결정에 일침을 놓는다. 중요한 건 제작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갈 스토리라고. 픽사의 성공이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잘 탄 CG 애니의 선점효과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발전시킨 창작의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믿고 꾸준하게 정도의 길을 걸어간 그 느림의 미학이 픽사의 진짜 성공 요인이라고 영화는 힘주어 말한다. 그런 메시지 속에 [픽사 스토리]는 성공한 기업의 자랑담이 아니라 다음을 도전하는 이들을 응원하는 격려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남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영화 속 픽사 직원들의 말이 꽤 마음 속에 남는다. 매년 여름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전해주는 그들의 신작처럼 말이다. 벌써부터 올여름 개봉할 그들의 신작 [엘리멘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