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의료시설과 대중교통 등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다. 2020년부터 시작된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팬데믹의 끝자락이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정말 많은 사람과 산업들이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았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작년 5월 거리두기 해제로 극장은 거의 정상 영업에 돌입했지만, 팬데믹 시기의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몇몇 영화들은 관객과 계속 만났다. 예전처럼 N백만 동원이 쉬운 시절도 아니며, 10시 이후로는 극장 상영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 개봉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좋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극장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이때,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더 빛을 발했을 작품들의 희생 아닌 희생이 더욱 안타깝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좋은 평가와 많은 관객을 모았을 한국영화들을 살펴본다. 재개봉이나 특별전이 아닌 이상 극장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들 작품의 가치와 재미를 OTT 등을 통해 더 많이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자산어보

이미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021년 3월 31일에 개봉한 [자산어보]는 코로나 거리두기와 사회적 제약에 직격탄을 맞아 전국관객 33만명의 저조한 흥행성적을 거뒀다. [왕의 남자] [사도] 등 사극에서 독보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이준익 감독이 [동주] 이후 오랜만에 흑백으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과 그곳에서 바다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설경구와 변요한이 각각 정약전과 창대 역을 맡아 소위 ‘사제 케미’를 보여주며 영화의 웃음과 깊은 메시지를 호소력 있게 전한다. 흑백으로 수놓은 자연의 숨멎급 비주얼과 설경구, 변요한은 물론 이정은, 조우진 등 명품 배우들이 함께하는 앙상블, 시대의 한계와 청년의 꿈을 대비하며 자아내는 메시지가 그야말로 ‘작품’을 만난 뿌듯함을 준 영화였다. 코로나 여파로 흥행은 실패했지만, 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30회 부일영화상 최우수감독상(이준익), 42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설경구) 등 그해 시상식에서 주요부문을 휩쓸며,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미지: 찬란

코로나가 막 시작된 2020년 3월 4일에 개봉해 영화의 제목과 다르게 참 복이 참 없었던 이 영화. 하지만 좋은 작품은 관객이 알아본다는 명쾌한 공식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도 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일하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실직하면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의 PD를 했었던 김초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늦깎이 배우 강말금이 주인공 찬실 역을 맡아서 캐릭터 싱크로율 120%의 연기를 펼친다.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때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모으며 독립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강말금 배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공감 가는 연기와 꿈과 현실에서 갈등하는 찬실의 고민이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기도 했다. 먼저 본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영화의 기대감은 높았지만, 코로나 유행시기와 겹쳐 29,000명 정도의 흥행에 그쳤다. 하지만 이 수치도 당시 최악의 극장 상황과 독립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선전한 셈. 이 같은 입소문에 힘입어 2020년 11월 26일에 재개봉해 관객과 꾸준한 만남을 이어갔다. 개봉 시기는 운이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발견한 많은 사람들에게 한 가득 복을 건넨 작품이었다.

승리호

이미지: 넷플릭스

[승리호]는 여기 소개한 작품들보다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겨 코로나 시대에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이유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SF 블록버스터의 도전이었고, 그 시도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승리호]는 2029년 우주 시대를 배경으로 우주 쓰레기를 주워 도는 버는 청소선 승리호가 우연히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늑대소녀] [탐정 홍길동] 등 장르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조성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에서 SF, 우주를 구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지만, 작품은 이질감 없는 CG와 초대형 스케일을 선사하며 사실적이고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여기에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사하며 서사의 재미도 함께 전한다. 작품의 만족도는 제각각 다르지만, 적어도 대형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봤다면 한국영화 중 역대급 비주얼 효과를 경험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제작비나 여러가지를 선방했지만, 예전과 같은 시장에서 여름 극장가의 대표주자로 나왔다면 꽤 많은 인기를 얻었을 듯싶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미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여기 소개한 작품들 전부 코로나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지만, 이 작품은 그 정도가 심했다. 2020년 2월 12일 개봉을 확정 지었는데, 이때 코로나19의 여파로 부득이 19일로 날짜를 옮겼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룬 개봉일에 코로나19가 더 확산되면서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개봉 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받으며 기대감이 컸었는데, 여러모로 관객과의 만남이 쉽지 않았던 케이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건넨 재미와 구성은 한국 장르 영화에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명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돈 가방을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처절하고 아찔한 관계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신현빈 등 믿보급 배우들이 총출동해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흡입력 있게 이끌어간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보는 듯한 서사 구조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전환되어 재미를 배가한다.

남매의 여름밤

이미지: 그린나래미디어(주)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영화가 피해를 봤지만, 2019년 후반부 부산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선을 보여 많은 호평을 받은 독립영화들이 특히 아깝게 되었다. 이들 영화들이 팬데믹이 없던 2019년에 공개되어 평단과 영화팬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이듬해 일반 개봉을 기대했는데, 생각지 못한 전 세계적인 재난에 극장 상영이 많이 어려워졌다. 위에 소개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랬고, [남매의 여름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그럼에도 상당한 입소문을 일으키며 한국독립영화의 끈끈한 힘을 보여줬다.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어 시민평론가상, 넷팩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KTH상 등 4관왕을 달성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기작을 보는 듯한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구성, 여운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감동은 영화가 끝나고서도 계속되었다. 2020년 8월 20일 개봉해 22,600여명의 관객 동원에 그쳤지만, 앞서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예처럼 여러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작품 역시 굉장히 선전한 편이다.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출력을 보이며 2020년~21년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쓴 윤단비 감독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