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밀도 있는 시선을 담았던 [도희야]의 배두나 배우와 정주희 감독이 다시 만났다. [다음 소희]는 2017년 전주 한 콜센터에서 벌어진 실습생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칸국제영화제를 비롯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내 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많은 극찬을 받으며 기대감을 올렸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펼쳐진다. 고등학생 졸업반 소희(김시은)가 콜센터에 취직하면서 겪는 여러 부당함을 자세하게 그린다. 춤을 좋아했던 꿈 많은 소녀가 직장내의 불합리에 어떻게 고립되고 망가지는 지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이를 방관했던 사회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이후 이야기는 형사 유진(배두나)이 맡아서 주도한다. 18세 소녀가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되짚어보는데 이 과정에서 직장, 학교 모두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부정한다. 작금의 현실에 점점 분노를 쌓아가는 유진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며, 진짜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의외로 영화는 이 같은 전개를 뜨겁고 거침없이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잔잔하게 그려내 조용한 분노를 빚어낸다. 그런 모습이 직장에서 힘 없이 당하지만 가족, 친구들에게는 괜찮다고 미소 짓는 소희의 마음과 닮았다. 그럼에도 비판의 방향은 거침없고 예리하다. 작게는 소희를 괴롭혔던 직장, 그를 방치했던 학교, 더 나아가 곪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관리하지 못했던 상부기관까지, 날 선 시선을 유지한다. 작품의 탄탄한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 속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미지: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다음 소희]는 씁쓸함이 가득하지만 이와 별개로 소희 역을 맡은 김시은의 연기는 돋보인다. 김시은은 언제나 당당하고 밝은 소녀가 현실의 문제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극에 녹여낸다. 때로는 불합리에 큰 목소리를 내고 저항도 하지만, 어른들의 잘못된 기대와 압력에 어찌하지 못하는 한계를 공감 가는 연기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무언의 도움을 바라던 소희의 눈빛이 오랫동안 마음 속에 남을 듯하다. 후반부 소희의 행적을 묵묵히 따라가며 현실의 부조리에 관객 대신 소리치는 배두나의 연기도 작품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준다.

제목의 의미가 남다르다. 영화의 전개처럼 두 부분으로 해설할 여지를 남긴다. 사람을 숫자로만 바라보고 당장의 성과에만 집착한다면 애석하게도 우리는 또 ’다음 소희’를 만날지도 모른다. 영화가 주는 경고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빚어낸 사회적 논의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바라본다면 더 나은 ‘다음’ 미래 속에 춤을 추고 싶었던 ‘소희’의 꿈을 지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제목 안에 담긴 현실의 절망과 작은 희망의 교차 속에 ‘지금의 소희’를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은, 영화의 괜찮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