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혜연

1975년,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은 ‘르 스모킹’ 룩을 입고 머리를 말끔히 뒤로 넘긴 모델의 모습을 포착한다. ‘르 스모킹’ 룩은 1966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선보인 파격적인 스타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턱시도를 여성화한 룩이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허물며 양성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린 위 사진은 당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강인한 여성의 상징으로서 유효하다. 이후 여성들은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몸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주는 르 스모킹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남성들만 입던 바지는 어느새 여성들에게도 일반화되었다. 이 덕분에 2022년 ‘생 로랑’이 보여준 턱시도의 재해석이 낯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준 이브 생 로랑은 위대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생 로랑’의 설립자이다. 자릴 레스페르가 연출한 2014년 영화 [이브 생 로랑]은 그의 일생을 담아낸 작품이다. [프란츠], [새벽의 약속], [아망떼] 등에서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피에르 니니가 이브 생 로랑을 연기한다. 이 작품은 우리가 몰랐던 이브 생 로랑의 인간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가 왜 ‘옷’을 통해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으며, 성공한 천재로 인정받으면서 왜 스스로는 천재성을 의심했는지, 그 우울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고, 그런 그의 정신적 병약함마저 사랑했던 피에르 베르제는 누구였는지. 예술에 시달리면서도, 예술만을 사랑했던 한 인간의 삶이 연인 피에르 베르제의 시점에서 시간순으로 나열된다.
유년기부터 어머니와 누나들을 위한 드레스를 디자인했던 이브 생 로랑은 디자인를 제외한 모든 것에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남들은 그를 ‘멍청이’라 불렀고, 스스로조차 자신을 ‘바보’라고 표현했다. 피에르 베르제에 의하면, 이브 생 로랑은 태어난 순간부터 우울증을 달고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 하지만 디자인에서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일에는 모든 순간을 바쳤다. 자기 안의 모순을 다듬을 힘은 부족했지만, 분출할 재능은 충만했으니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가 크리스챤 디올의 조수로 일하던 1957년, 죽음을 앞둔 크리스챤 디올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이브 생 로랑을 지목한다. 그렇게 21세의 젊은 나이로 디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그는 첫 번째 컬렉션에서 ‘트라페즈 드레스’를 선보이며 열광적인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군에 입대해 신경쇠약과 조울증에 시달리게 되며 결국 디올에서 해고된다.
1965년에는 피트 몬드리안의 회화 작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에서 영감받아 ‘몬드리안 드레스’를 제작하고, 1966년에는 앞서 언급한 ‘르 스모킹’으로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 그후 미니스커트, 시스루 룩, 트렌치 코트 등을 제작하며, 여성들의 흥미를 이끄는 파격적인 옷들을 선보였다. 2002년에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이브 생 로랑은 패션계를 은퇴한다.

이브 생 로랑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는 연인 피에르 베르제가 함께했다. 두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사랑할 때, 그들은 모로코 마라케시의 사막을 누비는 것으로 여유를 만끽한다. 파리의 바쁜 일상과 대조되는 그곳에서 새로운 빛과 색을 찾으며 영감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후에 이브 생 로랑이 현실적인 감각들을 잃으며 타락해갈 때, 피에르 베르제는 ‘마라케시가 예전의 빛을 잃었다’고 독백한다. ‘사랑하는 이브 생 로랑, 너는 예전의 빛을 잃었어’라고 말하는 연인의 애상과 다름 없다. 이미 자기 안에 갇혀버린 이브 생 로랑은 잔인할 만큼, 연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일 년에 두 번, 컬렉션이 열리는 봄과 가을에만 행복했던 이브 생 로랑은 아름다움에 집착한 인간이었다. 술과 마약에 의존하며, 병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피에르 베르제가 반했던 이브 생 로랑의 수줍은 신학생 같은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스스로 가시밭길 걷는 예수를 자처하는 고집스러운 인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겪으며, 결국 피에르 베르제도 인정하게 된다. 이브 생 로랑이 그저 ‘아름다움’을 사랑했듯이, 자신도 이브 생 로랑의 ‘아름답고 청렴한 시선’만을 사랑했다는 것을.
영화 [이브 생 로랑]이 사랑 영화로 읽히는 이유는 그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화자의 시선 덕분이다. 세상에 알려진 이브 생 로랑은 명민하고 자유로운 예술가이지만, 피에르 베르제의 시선에서 그는 안쓰럽지만 이기적이고 해로운 연인이었다. ‘내 인생의 남자는 당신뿐’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아름다운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매료되니 말이다. 그럼에도 피에르 베르제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애정어린 혹은 애증 섞인 마음이 이 전기영화를 짙은 로맨스로 물들였다. 마치 사랑 없는 삶에는 남는 것이 없다는 듯이.

그러므로 [이브 생 로랑]은 넘칠만큼 미화되었다. 이브 생 로랑의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행동들과 예민함이 때로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었을 테지만, 피에르 베르제는 그의 치명적인 결점들을 탓하지 않고 조용히 안아준다. 극의 후반,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의 쇼에 방문했음에도 환영받지 못한다. 애써 숨기지도 않으며 그를 경계하고, 불청객 취급하는 관계자들의 시선이 어쩌면 더욱 현실적이다. 위태로운 이브 생 로랑이 그에 맞서 끝까지 우아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 연인 피에르 베르제에게 흠뻑 받았던 사랑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에게 바치는 편지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에서, ‘너를 걸을 수 없게 했던 그 거인의 날개’를 활짝 펼치라고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제 등에 ‘거인의 날개’를 짊어지고 있을 때, 사랑스러운 연인들은 어떤 위로를 주고받을까. 당신의 뒤를 지켜줄 테니 용기를 내라고 말할까, 그 무거운 날개를 잘라버리고 함께 쉬자고 말할까. 어떤 말로든, 사랑한다는 이유로 힘이 되어 주려는 예쁜 마음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